세상이야기

현대 유학,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도보사랑 2022. 3. 13. 12:11
현대 유학,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유학(儒學)을 말하면 전통을 생각하고 과거 조선시대 조상들의 신념, 가치관을 떠올린다. 혹은 이 학문의 전공자들이 종합대학에서 여전히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을 상기한다. 전공자로서 변호하자면, 유학은 상당한 생존력과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부터 유학은 양주(楊朱), 묵적(墨翟)의 주류 사상과 싸웠고 제국이 세워진 후에는 더 강성해졌다. 유학이 불교와 오랜 시간 불꽃 튀는 접전을 벌였고 그 결과 신유학(新儒學)으로 꽃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17세기 이후 유학은 중국과 조선을 막론하고 서양 학문과 맞서야 했다. 흔히 실학자로 알려진 조선 후기의 많은 지식인들은 서학(西學)에 대해 모른척 할 수 없었다. 서양인들은 과학과 군사력을 등에 업고 동(東)으로 진출했고 이것은 유학자들의 삶을 위협했다.

  오늘날 유학의 실정은 어떠한가? 유학의 입장에서 20세기는 또 다른 시련의 계절이었다. 20세기의 유학은 생존하기에 급급했다. 우선 중국에서부터 엄청난 폭풍이 일었다. 1905년 청나라가 과거제를 폐지했다. 지식인이 유교 경전과 유학의 가르침으로 먹고살게 해준 공무원 선발제도의 폐지는 유학에 심각한 도전을 초래했다. 유학의 암울한 현대사는 마오쩌둥(毛澤東)이 공산주의 이념으로 문화혁명을 일으켰을 때 극에 달했고, 1973-1974년 비림비공(批林批孔) 운동이 전개되었을 때 바닥을 쳤다. 마오쩌둥과 홍위병들은 공가점(孔家店)을 4대 악의 원흉으로 타도하면서 공자를 “천하의 몹쓸 놈(頭號大混蛋)”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20세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유학은 동아시아인들의 삶의 무대로 복귀한다. 1982년 중국 최고지도자였던 장쩌민(江澤民)은 유학의 덕치(德治)를 선양하고 그의 후계자 후진타오(胡錦濤)는 조화로운 중국사회를 표방하며 유학적 조화와 질서를 내세운다. 2002년 11월 30일, 문화혁명 때 산산이 부수어진 공자상이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에 다시 세워진 것은 유교부흥의 중요한 상징이다. ‘우수한 유교적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공자 사상의 정수를 세계에 알리며 인류의 아름다운 미래를 건설한다’는 기치 아래 공자학원(Confucius Institutes)이 2004년부터 설립되었는데 현재 전 세계에 300개가 넘는 지부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어떠한가? 1997년 여름 한국의 지성사를 새롭게 쓴다는 포부를 갖고 창간한 《전통과 현대》는 “유교와 21세기 한국”을 특집호의 핵심 이슈로 다뤘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서구근대의 개인주의적 사유를 비판적으로 지양하며, 당시 필진들은 유교 전통에 대한 긍정적 성찰의 단초를 마련하려고 노력했다. 유교가 다음 세기의 보편담론, 즉 서구근대의 대안이 될 만한 훌륭한 지적 자산을 가졌다고 본 것이다. 십여 년 뒤 2007년 공영방송 KBS는 아시아 문명기획 <인사이트 아시아>라는 제목 아래 “유교, 2500년의 여행”을 방송했다. 방송 내용을 담은 『유교, 아시아의 힘』이란 책이 곧이어 출간된다. 이곳에선 중국, 한국, 일본과 서양 학자까지 총동원해서 유교를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21세기의 비젼으로 소개했다.

  또 다른 시련을 딛고 일어선 유학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나는 유학이 20세기 이후의 해체와 재편 과정을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 작년 연구년 학기 중 미국에 체류하면서 나는 놀랍게도 적지 않은 중국계 유학 연구자들이 유교적 자원을 정치화하고 사회제도로 적극 활용하는 것을 목격했다. 정치유학(Political Confucianism), 제도유학(Instituitional Confucianism), 시민유학(Civic Confucianism) 등으로 불리며, 유학은 현대의 정치철학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앙칭(蔣慶), 판루핑(范瑞平), 린안우(林安梧), 조셉 첸(Joseph Chan), 바이통동(白東) 등 일군의 중국계 학자들은 각자 입장이 다르지만, 유교적 엘리트주의, 도덕성에 기반한 유교적 능력주의(Confucian meritocracy)를 표방한다.


  나는 유교 전통을 서구자유주의 및 민주주의와 접목하려는 이들의 적극적 시도가 유의미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 위험성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우리는 수천 년 강대국이었던 중국과 오늘날 우리 삶을 지배하는 서구문명의 경계에 있다. 서구근대에 대한 반성 못지 않게 유교와 유학에 대한 맹렬한 자성이 필요하다. 나는 유학이 20세기 이래의 혹독한 시련을 겪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쟁점들에 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유교 가족주의와 친족주의는 급격하게 변화된 삶의 형태와 가족구성을 숙고해야 한다. 2021년 9월 말 기준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1인가구가 처음으로 전체 가구수의 40%를 돌파했다.[출처:여성신문(http://www.womennews.co.kr)] 1인가구와 2인가구를 합하면 63.9%가 넘는다. 이것은 수백 년 이상 지속된 전통적인 가족구성, 즉 혈연과 결혼, 입양 등 국가가 승인하고 관리하는 정상가족의 규범과 제도가 더는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사의례와 조상관념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윤회봉사, 장자(長子)우선 가문승계 등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효제와 가족주의에 기반한 유교는 이 문제에 대면해야 한다.

  두 번째는 ‘친소존비(親疏尊卑)’, ‘상하귀천(上下貴賤)’을 따지는 유교적 위계질서의 문제다. 모든 문명사회의 어떤 조직에도 위계질서는 발생할 수 있다. 이건 유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 점을 성찰하지 못하면 유학은 보편사유로 살아남을 수 없다.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에서 유래한 명분(名分) 관념은 군신, 부자, 부부(남녀), 노주(奴主) 관계에서 상하귀천에 따라 상이한 역할과 대우를 요구했다. 양반사족과 상민의 차별[士族常漢之分], 처첩(妻妾)의 차별, 적서(嫡庶)의 차별 등, 유교적 구별짓기의 논리가 재생산되었다. 수많은 예제(禮制)는 차등적 인간관계를 실현하는 행동규범이었다. 오늘날 생존 가능한 의례가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삶과 감정을 위로하고 심신을 조율하도록 돕는 매일의 소박한 생활예식이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공동 관심사에 따른 유대감을 형성하고 공감을 키워주는 유연하고도 유쾌한 행위양식이 필요하다.

  세 번째로 짚어야 할 문제는 유교의 과잉된 도덕담론이다. 박지원의 「열녀함양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 정약용의 「열부론(烈婦論)」에서 볼 수 있듯이, 절개를 위한 여성자살은 조선후기 심각한 사회현상 중 하나였다. 수많은 여성이 잔혹하게 자살했는데 유교윤리는 이 점에 분명한 책임이 있다. 충효열의 강상윤리가 오늘도 보편적일까? 유학의 도덕담론이 유의미하려면 보편성과 개방성, 포용성을 가져야 한다. 충효열의 현대판 덕목은 우리사회에서 정의나 공정으로 불린다. 비대해진 정의 담론은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차별하는 정치무기가 되었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굳건히 믿는 신념과 가치에 대한 보존의식이 없다면,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진보도 있을 수 없다. 진보는 보수의 굳건한 자기긍정에서 자라고 성장한다. 보수 역시 진일보한 미래를 그리며 그것을 지향할 때 보수로서 명맥을 지킬 수 있다. 좋은 보수는 좋은 진보와 만나고 화해한다. 나쁜 보수와 나쁜 진보는 서로 편 가르고 공박한다. 유교윤리는 의리로써 편 가르기보다는 상대와 화해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네 번째, 나는 유학의 마음 공부법이 일상으로 돌아와 자신을 돌보고 타인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심리적 토대로 기능할 수 있는지 자문해본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풍전등화의 국가적 위기에서도 많은 유학자들은 유학의 본령이 심학(心學)이라고 보았다. 유학은 사적 자의식과 편향된 감정을 조율하기 위한 다양한 공부법을 제안한다. 이것은 내 마음에서 혼자 해소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만나는 타인과 일상에서 매일 부딪히며 점검하는 방법이다. 나와 타인이 만나는 수많은 길에서 유학의 마음론은 어떤 지침을 줄 수 있을까? 대상에 함몰되거나 내 마음으로 회귀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중용의 길은 무엇일까? 현대 유학은 이 문제에 답함으로써 실존적 고민에 처한 오늘의 우리와 곧바로 대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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