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

도보사랑 2022. 11. 26. 17:31

이번 주말 문경 주흘산을 오를까, 한탄강변을 걸을까 생각하다 철원 한탄강으로 가기로 했다. 철원은 과거 국방부에서 국무총리실 파견근무시 함께 일하셨던 이현종 군수님이 지역행정을 펼치시는 곳이다. 軍에대한 애정과 고향발전 뜻이 깊은 군수님을 찾아 뵙고 싶었으나 짧은 한나절 도보여행길이었기에 미리 연락을 드리지 못하고 군향수(軍鄕愁)가 짙은 철원을 찾았다.


철원(鐵原)은 나에게 미지의 땅이다. 역사적으론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깊고 폭넓은 스토리가 담긴 곳이긴 하지만 내가 직접 밟지 못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군 재직시 가까운 포천 일동에서 근무하면서 가끔 들렀을 뿐이다. 인접 연천 전곡땅에서 구석기 유물이 발견된것으로 보아 철원도 지구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류가 살았던 흔적이 발견될 확률이 아주 높은 땅이다. 철원평원에서 지구의 생성 피(血)인 마그마가 흘러내려 한탄강을 따라 주상절리(柱狀節理)가 형성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철원은 후삼국의 궁예, 조선의 세종과 임꺽정, 6.25전쟁 당시 철의 삼각지 등을 생각케하는 문화와 역사가 스며있는 땅이다. 특히 궁예의 발자취가 깊다. 궁예는 901년 송악에 나라(마진)를 세웠다가 905년에 철원으로 도읍지를 옮기고 국명을 태봉으로 칭했다. 도읍지를 옮긴 이유가 무엇일까? 병기를 만들수있는 철(鐵)이 많이 생산되는 평원이라서, 아님 지방 귀족의 냄새가 짙은 송악에서 벗어나 미지의 땅에서 새나라를 건국하고 싶었던 것일까. 철원은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옛부터 충주땅이 중원으로 불리웠지만 지리적으론 정확히 한반도 전체의 중앙은 철원지역이다. 궁예는 반도의 중심 넓은 평원에 궁을 짓고 만인이 받드는 큰나라를 세우길 원했을것이다. 그러나 그 역사는 짧았다.


이름도 아름다운 한탄강은 평창군에서 시작하여 철원군을 지나 임진강으로 흘러가는 길이 약 141KM의 강이다. 이 한탄강을 따라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인 주상절리에 인공의 잔도길(棧道란 험한 벼랑과 절벽 같은 곳에 선반을 매달아 놓은듯이 만든 길을 뜻함)이 설치되어 있다. 점심때 동송읍에 도착하여 전통식당에서 막국수와 녹두전을 먹고 순담매표소로 갔다. 표를 끊으니 절반의 입장료를 철원사랑상품권으로 되돌려준다. 입장료 수익의 일부를 철원군내 식당이나 가게에서 사용하게 하여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려는 창의적인 행정시스템이 놀랍다.


철원 한탄강 트레킹길은 여러코스가 있는데 그중 빠른 물살의 협곡과 다채로운 형태의 바위가 가득한 순담계곡 잔도길을 걷는것이 으뜸이다. 순담에서 드르니 전망대까진 약 3.6KM의 거리다. 잔도는 대충 50-60m 높이의 절벽에 30-40m 되는 위치에 설치되어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계곡 밑이 훤히 보이는 스틸그레이팅(Steel grating) 또는 일부 튼튼한 나무계단으로 제작되어있다. 다소 출렁거리고 고소공포증을 유발하는 투명유리 구간이 있지만 환상적인 주상절리길을 감상하는데는 아무 장애가 되지않는다.


절벽을 따라, 절벽과 허공사이를 따라 깊은 협곡의 비경이 펼쳐진다. 깍아지른듯한 절벽과 강암반은 흑색, 암갈색, 황토색, 흰색등 여러 색깔의 암석들로 이루어져있고 거센 강물의 물빛도 계곡의 구비와 깊이에따라 검거나 푸르다. 특히 작은 모래톱을 쌓은곳의 물빛은 짙은 진청색이다.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의 에메랄드 물빛이 화려한 서양의 빛이라면 이곳 절리의 물빛은 그윽하면서도 고색창연한 동양의 빛이다. 이곳이 지구의 역사에서 고생대에 형성되었는지 아님 파충류의 시대였던 중생대에 형성되었지는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아득한 옛날 용암이 흘러내리며 깊은 협곡을 형성하던 그때를 마음껏 상상해본다. 암벽에 피어난 이끼와 잔도위를 가로질러 벋어난 소나무도 협곡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계곡이 길고 깊다보니 저멀리 하늘과 구름을 배경으로 찍어보는 원근의 풍경은 이런 잔도를 건설한 인간노동의 숨결과 노고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것 같다. 단풍이 짙게 물든 시기에 왔으면 더 좋을뻔했다.


드르니 전망대까지 왕복 7.2KM를 걷고나니 어둑어둑해진다. 가까운 고석정(孤石亭)을 찾았다. 순담에서 가깝고 한탄강에서 제일 아름다우며 임꺽정과 세종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에. 늦은 시간이었지만 강 한가운데 높이 약 10M의 고석암과 그뒤 모래톱을 가로지르는 강흐름이 너무 좋아보였다. 이곳엔 세종 강무정이 있다. 세종대왕이 철원평야(대야잔평)에서 강무훈련(국왕이 직접 참가하는 군사훈련 겸 사냥행사)을 마치고 머물렀던곳이다. 실록에는 세종이 재위기간중 총 19회에 걸쳐 93일간이나 철원에서 강무를 진행하였고 사냥이 끝나면 이곳 고석정에서 신하, 군사와 백성들에게 사냥한 짐승과 음식을 나눠주며 위무하였다고 한다. 4군6진을 개척하며 국방을 튼튼히한 우리나라 최고의 군왕이다.


저물어가는 철원평원의 낙조를 보니 918년 왕건에게 권력을 빼앗긴 짧았던 궁예의 왕조 역사를 다시 보는듯 하다. 왕조의 역사건 인간의 개인사건 흥망과 쇠락, 부활은 반복된다. 궁예를 뒤엎고 고려를 건국했던 왕건도 조선에게 나라를 내어주지 않았던가. 군왕은 외침으로부터 나라를 방비하면서 백성들을 따뜻하게 입히고 배불리게 먹이면서 역사에 소명을 다하면 된다. 작금의 지도자도 마찬가지, 정치적 야심을 배제하고 긴 안목으로 흔들렸던 국가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안보를 튼튼히 하면서 미래 먹거리 확보와 세계 경제를 선도하면 역사에 한점 부끄럼이 없을것이다.


철원땅엔 한탄강 주상절리길외 삼부연폭포, 도피안사, 소이산, 학저수지, 직탕폭포, 명성산 등 유명 관광지와 승리전망대, 백마고지전적지, 제2땅굴, 노동당사등 안보관광지도 많다. 다음 기회엔 다보지 못한 좋은곳을 찾아보고 늘 군민과 함께하며 고향땅을 발전시키고있는 이현종 군수님도 뵙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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