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산행 #1(2023. 2.19, 일)
오늘은 24절기중 두 번째 절기인 우수다. 우수경칩땐 얼었던 대동강물도 풀린다는데 오늘 한양의 일기예보는 오전에 비, 오후엔 흐림.
시간을 두고 한양의 산들을 걸어보기로 했다. 세계 유수의 도읍지중 한양만큼 큰 강을 중앙에 두고 사방으로 높낮이가 다양하고 각각 특이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산을 가진 곳은 없다. 현역시절 서울에서 근무시 짧은 산행을 드문드문 한적있지만 그땐 산을 제대로 알지못했다. 한걸음 한걸음 옮길때마다 내가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알게해주는 배움의 산행길이 되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에 안산(295.9m)과 인왕산(338.2m)부터 찾았다.
안산과 인왕산을 연결하는 무악재 하늘다리에 서면 그 옛날 이 고개길을 넘는 사람들앞에 호랑이가 나타나고, 중국으로 조공을 바치러가는 조선의 사신들과 한양으로 들어오는 중국 사신들, 지금의 독립문 자리에서 중국 사신들을 맞이하는 조선의 왕, 임진왜란때 비를 맞으며 고개를 넘어 북으로 파천(播遷)하며 한숨을 내쉬었을 선조, 인조때 거침없이 말을 달려 고개를 넘었을 청군들을 상상할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을 가로지르며 안산자락길 초입에 들어서면서 이곳에서 순직한 선열들에게 잠깐 묵념을 올리고 공사중인 이곳이 고통과 오욕이 아닌 민족혼의 성지로 거듭나기를 바래본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흐리다가 정오쯤 맑은 날씨가 되어 봄기운도 느낄수 있어서 좋다. 안산 정상으로 오르며 한가로운 기분에 아름다운 한양의 풍경을 마음껏 담아본다. 군데군데 역사의 한조각들을 기록한 표지판들을 유심히 읽어보면서 몰랐던 사실도 기록해본다.
무악재 하늘다리에 서서 고개를 넘는 수많은 차량들과 빽빽이 들어선 건물들을 바라보면서 약 630여 년전의 시공간을 상상해본다. 역사적 사실이든 아니든 큰 의미는 없다. 상상이 주는 나만의 자유이고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인왕산은 다양한 모습을 띤 바위와 성곽길이 있어서 참 좋다. 1.21사태이후 설치되었던 경비초소도 거의 철거되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경복궁과 청와대, 세종로의 높은 빌딩숲,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한강흐름은 파란만장한 시대를 넘어 힘찬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것 같다. 순간순간 어려움은 있어도 21세기 남은 시간엔 토인비가 예견했듯이 우리가 세계역사의 주역이 될것이다.
* 안산자락길~안산정 상(봉수대)~무악재 하늘다리~인왕산자락길~인왕산정상~성곽길타고 청운동으로 내려옴, 18,000보 걸음
* 한양 배움의 첫 산행
1.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정하고 궁궐터를 정함에 있어서 하륜이 '무악(안산) 주산론'을 주장했네.
※ 궁궐터와 관련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각각 북악과 인왕산을 주산으로 하고자 논쟁한걸로 알고 있었는데 하륜도 이런 주장을 했었네. 내가 보기에도 안산의 앞은 궁궐이 들어서기엔 공간이 좁다는 느낌이다.
2. 조선의 봉수체계
전국 각지에서 오는 조선의 봉수는 남산에서 집결하였다. 남산에는 제1봉수대에서 제5봉수대까지 다섯 곳의 봉수대가 있었다. 이중 평안도 강계~황해도~경기도~한양 무악봉수대~남산으로 이어지는 봉수는 제3봉수대였다. 무악산 봉수대는 남산의 제3봉수대에 최종 보고되기 바로 전 단계의 봉수대였던 것이다.
3. 옥개석(屋蓋石)
옥개석은 여장위에 올려진 지붕돌로, 빗물이 체성으로 흘러드는 것을 방지하고 유사시 지붕돌을 밀어 성위로 올라오는 적병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다. (성벽은 밑에서부터 위로 체성, 여장, 옥개석으로 이루어짐)
※ 인왕산 정상엔 한양도성의 일부로 성곽의 최상단에 놓인 옥개석 한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