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산행 #2(2023. 2. 25, 토)
윤동주 문학관에 들러 윤동주의 생애, 운명, 신념의 노래인 序詩를 암송해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28년 생애, 짧았으나 굵게 산 윤동주. 서시는 1941.11. 20일에 썼다. 45년 해방되는해 2.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기 약 3년 3개월전에 썬 자화상 같은 詩다.
길 건너 세검정고개 창의문 입구엔 1968년 1.21사태 당시 청와대를 습격하려던 무장공비들을 검문하다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의 동상과 순직비가 서 있다. 임무에 충실했던 두 공직자의 삶이었다.
어제 평창동에 살고있는 나의 절친 박장군(박장군은 나의 중.고.사관학교 동기인데 거의 매주 북한산을 오른다)에게 경복궁의 주산 북악(백악산, 342m)에서 북한산 형제봉, 보현봉으로 연결되는 산행길 여부를 문의하니 길은 있지만 바른 길 찾기가 쉽지않으니 이번엔 북악만 가고 다음에 북한산 이름난 봉우리를 함께 걷자고했다.
오늘의 한양 배움의 길은 창의문~북악정상~숙정문~삼청동으로 내려오는 북악 성곽길이다. 공간적으로 짧은 길이지만 시간적으론 조선건국에서 부터 최근 청와대가 국민들에게 온전히 개방되기까지 630년 동안 흥망성쇠를 겪어온 긴 역사의 길이다.
창의문에서 북악정상에 이르는 길은 오르막 계단 성곽길이다. 봄맞이 산행객들의 발걸음은 갓 피어난 봄꽃들처럼 향기있고 가벼운 느낌이다. 날씨가 화창하고 함께 걷는 가족, 친구들이 있는데
오르막 길이 힘이 들리가 있겠느냐.
북악정상 바위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백악마루~1.21 소나무~청운대를 지나 북한산 전체 조망이 가능한 백악곡장에 이른다. 백악곡장에서 바라본 북한산 봉우리들. 좌에서 우측으로 족두리봉~향로봉~비봉~사모바위~승가봉~보현봉~형제봉이다. 앞으로 순차적으로 밟아 볼 봉우리들이기에 정겨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처음엔 이름이 숙청문이었다. 현존하는 도성의 문 중에서 좌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것은 숙정문이 유일하다. 지난해 임관 40주년 행사를 마치고 7중대 동기생들은 숙정문 아래 삼청각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솔향기 짙은 밤에 삼청각에서 올려다 본 숙정문은 달빛에 젖어 너무나 아름다웠다. 유수같이 흘러가는 시간, 그때 함께했던 동기들 얼굴들을 떠 올리며 발아래 삼청각을 사진에 담았다.
삼청공원으로 하산한다. 점심을 먹고 가끔 짧은 시간 공원산책을 했던 30여 년전 삼청동 근무시절이 생각나서 북촌거리를 지나 경복궁역까지 걸어본다. 삼청동 수제비집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이럴 땐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란 말이 딱 어울린다.
윤동주, 최규식, 김신조, 정도전, 겸재 정선(겸재는 북악산을 많이 그렸다), 김상헌(김상헌의 집은 북악아래 있었고 병자호란후 심양으로 끌려간 후 집을 그리워한 詩를 남겼다), 인조 등 조선의 몇몇 왕들, 그리고 이 북악길이 개방되기 전까지 청와대에서 국정을 수행했던 대통령들.. 조선건국에서부터 자유대한민국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단편의 사실들을 상상해본 북악성곽길, 참 좋았다.
숙정문지나 말바위쉼터에서 한양도성 스탬프투어 지도를 가지고 왔는데 이번 숙정문(북대문) 인증 도장에 이어 남은 3개 대문(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의 도장을 찍는 18.6Km 도성투어 길을 걷고 나면 한양의 속살을 어느정도 알 수 있으리라.
* 창의문~북악정상~
청운대~백악곡장~촛대바위~숙정문~말바위 쉼터~삼청공원,
11, 050보 걸음
* 한양 배움의 길
1. 한양도성의 역사
한양도성은 1396년(태조5년)에 백악(북악산), 낙타(낙산), 목멱(남산), 인왕의 내사산 능선을따라 쌓은 이후 여러 차례 고쳤다. 평균 높이 5~8m, 전체 길이 약18.6Km에 이르며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중 가장 오래도록(1396~1910년, 514년) 성의 역할을 다한 건축물이다. 한양도성엔 동서남북 사대문(홍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과 사소문(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이 있는데 이중 돈의문(서대문)과 소의문은 없어졌다. 숙정문, 광희문, 혜화문은 다시 세워졌다.
※ 도읍지를 사방으로 둘러싼 이런 도성을 가진 곳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세계에서 제일가는 문화유산이다.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걸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2. 창의문과 인조반정
창의문 주변의 경치가 개경의 자하동과 비슷하다고하여 자하문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창의문은 사소문중 유일하게 조선시대에 지어진 문루가 그대로 남아있다. 현재 문루는 임진란때 소실된것을 영조17년(1741년)에 다시 새운것으로 문루를 새로 지으면서 인조반정때 반정군이 이 문으로 도성에 들어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을 문루에 걸어놓았다.
※ 남한산성 아래 삼전도에서 청에게 삼배구고두 치욕을 겪은 인조를 옹립한 세력들이 이 문을 통해 도성으로 들이닥쳤다고 하니 왠지 씁쓰레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