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산행 #3(2023. 3. 5, 일)
난 북한산 비봉에 한번도 오른 적이 없다. 과거 서울 근무시절 체육활동의 일환으로 동료들과 산행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 시간이 제한되어 승가사까지만 올랐던 기억이 있다.
지난주부터 드디어 비봉에 오른다는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진흥왕 순수비가 있고, 이를 밝혀낸 금석학의 대가 김정희가 올랐던 길이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불광동에서 족두리봉~향로봉으로 오르는 길은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가파르다. 가뿐 숨을 내 쉬면서도 사방으로 펼쳐지는 한양의 아름다운 풍경과 이를 소중하게 담아 내는 산봉우리들을 올려다본다. 굵고 힘찬 암벽들이지만 부드럽게 이어지고 흐르면서 안으로 감싸 안는 북한산은 강인하면서도 자애로운 엄마의 품 같다. 세계 어느나라에, 어느 수도에 이런 산봉우리 무리들이 수를 놓듯이 줄지어 있을까.
한양에 사는 분들은 복을 타고 났다. 하늘이 내리고 지각의 솟구침이 빚은 자연의 혜택. 마음만 먹으면 자기 것이 될 수있는 북한산 산행이 주는 축복을 마음껏 누렸음 좋겠다. 산 기슭 양지 바른 곳에 작은 토방이라도 가져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조선시대였음 가능했을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의 한 단편을 만나러 가는 길에 한편으론 이렇게 걸을수 있고 상상을 즐길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한양의 산들, 애정을 가지고 걷다 보면 난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고 산에 안기는 때가 찾아오리라 믿어본다.
- 산에 안긴다는 것 -
산에 안긴다는 것은 산을 사랑하는것
솔 내음에 바람의 향기를 느끼고 쫒아가고
풀 한포기 돋음에 잃었던 마음을
다시 살려내는 것
산 길을 걸으며
옛 산의 모양을 그리고
옛 사람을 그리워하고 옛 추억에
옛 사랑에 고마워하는 것
그것은 산의 섭리에 감동하는 것
산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산을 가슴에 품을 수없다
산도 산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숨겨 둔 보물을 내어놓지 않는다
비우고 비우고 채우는 공간마저 비우는 사람을 사랑한다.
* 불광역~족두리봉(370m)~
향로봉(535m)~비봉(560m)~사모바위(560m)~비봉탐방지원센타로 내려옴. 20,300보 걸음
* 한양 배움의 산행
1. 지형경관 자원의 종합전시관 '족두리봉'
북한산의 화강암은 쥬라기 때(1억 8,000만년~1억 3,000만년 전) 화산 분출과 함께 마그마가 지각의 약한 틈을 뚫고 올라오다가 지하 깊은 곳(약 10~12Km 아래)에서 냉각, 고화되어 형성되었고, 오랜 세월 침식과 풍화를 받아 지금의 암석 모습을 하고있다.
족두리봉 일대엔 암석돔, 토어, 그르브, 나마, 산지타포니 등 잘 알지못하는 독특한 지형경관 유형을 갖추고있다.
※북한산중 가장 낮은 봉우리인 족두리봉에 유독 다양하고 기이한 형태의 암석들이 분포한다는 사실은 높은 것보다 낮은 것이 더 고귀하다는 의미?
2. 비봉 진흥왕 순수비
국보 제 3호다.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백제의 한강 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치적을 기념하기위해 이곳에 순수비를 세웠다.
비석을 세운이래 1,200여 년 동안 잊혀오다가 19세기 초에 추사 김정희가 비문을 판독하여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혔다. 비문에는 진흥왕이 북한산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지나온 여러 고을의 세금을 면제해주고 죄수들을 방면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원 비석은 1972년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고, 2006.10.19일 지금의 복제비석을 설치하였다.
※ 서라벌 좁은 고을에서 벗어나 큰강이 흐르고 북강역과 대륙의 바다에 이르는 기름진 땅을 차지하고자한 진흥왕의 웅지의 산물. 천하를 우러러보는 높은 산에 세운 비석, 고증학으로 이를 밝혀낸 추사의 의지도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