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산행 #4(2023. 3. 11, 토)
오늘은 북한산 승가봉과 문수봉을 오르는 날.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불교색채 짙은 이름의 두 봉우리다. 봉우리의 명칭은 고려시대 이전에 지어진 것 같다.
이른 새벽 집을 나서서 산행의 들머리 이북5도청으로 간다. 집에서 전철, 버스로 2시간이 넘는 거리다. 거리가 뭔 대수냐. 촌부의 한양 나들이는 귀하고 큰 기쁨 아닌가.
들머리에서 오르면 지난주에 올랐던 비봉과 사모바위를 거쳐서 가게 된다. 저번에 놓친 새로운 광경이 있으면 사진으로 담을 생각이다.
비봉오르는 중간 쉼터엔 많은 산행객들이 벌써부터 북적인다. 세계에서 산행객들이 제일 많은 나라, 산에서 건강을 다지고 친목도 도모하고 삶도 설계하는 山行의 나라다. 사람을 가까이하는 만큼 자연도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금상첨화, 더 살기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실로 자연을 아끼는 마음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쉬고 간 쉼터엔 쓰레기 하나 없다. 남은 음식과 비닐, 종이 등 쓰레기를 전부 베낭에 넣어 가지고 간다. 자연속 산행이 선하고 여유로운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수고하십니다"며 마주치는 산행길에서 누구나 먼저 건네는 반가운 인사. 산에서 배우고 얻는 것이 너무나 많다.
산행은 시간이 남아 도는 노년층만의 놀이가 아니다. 젊은이들도 산을 많이 오른다. 오늘도 피부 색이 다른 외국의 남녀 젊은이들이 Beat music을 들으면서 유쾌하게 산을 오른다.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지는 곳에선 와~우 하면서 여러 포즈로 연신 셔터를 누른다.
산행이 주는 기쁨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말에도 깊이가 있다. 나의 친구중 산사나이들이 그러하다. 산은 알면 알수록 오묘한 세계다.
승가봉 가는 길에 비봉과 사모바위를 뒤돌아보며 지난 주에 보았던 모습을 새롭게 담아본다. 지나온 길도 다시 보고 이름을 불러주면 또다른 꽃이 된다. 어느 시인의 詩처럼.. 오늘 오르는 승가봉과 문수봉도 뒤를 돌아보면서 이름을 불러줄 것이다.
승가봉(567m)이 먼저였는지 발아래 승가사가 먼저였는지 알수는 없지만 저 멀리 한양의 주맥(主脈) 삼각산(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조망이 눈앞에 펼쳐지기에 성큼 큰 바위에 올라서서 몇 번이곤 본다. 여러 문인들이 읊었던 저 삼각산중 백운대는 다음 주에 오를 예정이다. 태능 모교에서 수 없이 바라보았던 그 멀고 아득했던 봉우리!
문수봉 가는 길에 만난 바위문(?)도 예사롭지 않다. 바위덩어리 하나가 지붕처럼 얹혀서 멋진 문(門)이 되었다. 청수동 암문에선 북한산 성벽과 병영에대한 공부도 해본다.
오늘의 종착지 문수봉 정상에 서니 시원하고 날카로운 바람이 분다. 건너편 제일 높은 봉우리인 보현봉이 보살피듯, 감시하듯 굽어보는 느낌이다. 보현봉은 너무 험하고 낙상사고가 많이 발생하여 지금은 폐쇄 상태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보현보살은 문수보살의 엄한 언니인 모양이다.
성곽길을 따라 대남문, 대성문, 일선사를 거쳐 평창동으로 하산했다. 명산아래 부촌엔 이어령 거리가 있다. 시대의 지성인, 언어의 마술사는 지난해 2월에 우리의 곁을 떠났다. 그의 평생의 interest는 글쓰기, 스토리텔링 이었다. "내 것인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는 그의 마지막 저서 '마지막 수업'을 구입해서 읽어 볼 생각이다.
* 이북5도청~비봉~
사모바위~승가봉(567m)~문수봉(727m)~대남문~대성문~일선사~평창공원지킴터로 내려옴. 20,150보 걸음
* 한양 배움의 산행
1. 암문(暗門)의 두 양식
청수동 암문(淸水洞 暗門)은 나월봉과 문수봉 사이의 고갯마루에 위치해 있다. 1711년(숙종 3년)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의 암문중 하나로 탕춘대성과 비봉에서 성 안쪽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통제하기위해 설치했다.
청수동 암문은 다른 암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상부에 문루는 앉히지않고 성문 양쪽에 쌓아올린 장대석을 여러 매 걸쳐 만들었다. 이런 양식의 성문을 아치 모양의 홍예식과 구분하여 평거식(平拒式)이라 부른다.
※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때로는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되는 일종의 비상출입구로 홍예식과 평거식, 두 양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2. 북한산성의 경계시설과 병영 체계
북한산성 주요 출입 시설은 대문 6곳, 보조출입 시설인 암문 8곳, 수문 2곳을 두었다. 성곽지대에는 병사들이 머무는 초소인 성랑(城廊) 143곳이 있었다. 성 내부시설로는 임금이 머무는 행궁, 북한산성의 수비를 맡았던 삼군문(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의 주둔 부대가 있었던 유영(留營) 3곳, 이 유영의 군사지휘소인 장대(將臺) 3곳을 두었다. 또한 군량을 비축하였던 창고 7곳, 승병이 주둔하였던 승영사찰 13곳이 있었다.
※ 북한산성 승군의 총대장인 총섭을 지낸 성능대사가 1745년에 간행한 북한도(北漢圖)에는 이러한 병영 시설이 잘 그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