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산행 #5(2023. 3.18, 토)
오늘 백운대(836.5m)를 오르기위해 집을 나서기전 작은 책을 꺼내 배낭에 넣었다. 전철안에서 읽기 위해서다.
이 책은 내가 98년 사단 참모를 마치고 다른 부대로 전출갈 때 사관학교 선배가 나에게 선물했던 시집이다. 그때 한 번 읽고 책장에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책이다. 여러 詩중에서 한 편의 詩를 적어보면서 백운대에 오르는 마음의 준비를 해본다. 고통과 슬픔에도 의연하고, 아끼는 마음을 만나고 싶은 오늘의 한양 산행이다.
슬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정채봉
- 백두산 천지에서 -
아!
이렇게 웅장한 산도
이렇게 큰 눈물샘을 안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우이역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백운대 산행의 초입인 도선사까지의 2.1Km 거리는 통상 택시를 타고 가는데 난 우이역부터 걷는다. 옛부터 이름 높았던 우이구곡의 맑은 계곡물이 변함없이 시원하게 흐르는지 보기 위해서다. 도선사 입구 쉼터인 붙임바위엔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렸고, 일주문이 아닌 바위 기둥엔 천지동근(天地同根), 만물일체(萬物一體) 글귀가 새겨져있다. 자연과 일체가 되지 않은 사람은 백운대 입산을 허용치 않는가 보다.
하늘재에서 백운대로 바로 가지않고 인수봉(810.5m)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우측 영봉으로 먼저 오른다. 영봉엔 쾌청한 봄날을 맞이하여 젊은 산악 동호인들이 시산제를 지내고 있다. 산행 동호인들의 단합과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행사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복도 주었음 좋겠다. 영끌로 마련한 집의 가격이 더 이상 하락하지 않고 대출이자의 부담도 덜어지고 결혼하여 자녀들도 많이 낳았음 좋겠다.
다시 하늘재로 내려와 인수봉을 옆으로 보면서 백운대로 오른다. 깍아지른 인수봉 암벽을 타고 오르는 클라이머들이 경이롭게 보인다. 도전에 목숨 거는 그들의 모습을 담고자 폰을 댕겨본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온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대하소설 10권을 완성하고자 魂을 불사른 '혼불' 의 저자 최명희가 생각 났다.
독수리가 다시 날기위해 부리로 비대해진 몸 깃털을 뽑아내 듯 한 가닥 생명줄에 의지하여 고통을 감내하며 세찬 강풍이 몰아치는 Stone peak에 오르는
저들도 혼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미치지 않고선 혼을 불 사를수 없다.
가파르고 좁은 암벽길을 오르고 내려오는 산행객들, 안전을 우선으로 서로 양보하고 기다려주는 마음은 산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바람이 세찬 백운대 정상에 태극기가 힘차게 휘날린다. 외국인들도 많이 왔다. 제법 넓은 정상아래 마당바위엔 일어, 중국어, 영어로 대화하는 젊은 외국인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에 바쁘다. 이것으로 한양의 주산 삼각산은 세계적인 산임이 분명해졌다.
난 한 시간동안이나 마당바위에 머물렀다. 인수봉, 만경봉(800.3m), 저 멀리 도봉산과 사패산, 불암산을 감상하고, 조선의 도읍지 선정과 북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고양, 의정부, 양주고을에 뿌리내리고 있는 역사에 대해 상상도 하면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내 몸을 맡겨 본다. 그 역사 상상의 끝은 언제나 눈부시게 발전한 아름다운 서울의 심장에 다다른다.
하산은 용암문, 대동문, 진달래 능선길을 밟고 수유리로 내려왔다. 좀 더 길게 정릉쪽으로 걷고 싶었으나 길을 잘못 든 세 사람(두 미국인 여성, 그들의 친구인 한국인 남성)을 안내해 주느라 수유리 백련탐방센터로 함께 하산한 것이다. 배낭도 스틱도 없이 백운대를 오른 그들의 용기가 참으로 가상하였다.
오늘의 한양 배움의 길, 너무나 좋았다. 아득한 먼 옛날부터 의연함을 잃지 않은 백운대는 변함없이 인간을 사랑하고 아끼고 베풀어 줄 것이다.
* 우이역~백운대탐방
지원센터~붙임바위/도선사입구~하루재~영봉~백운대~만경대옆~용암문~대동문~진달래능선~백련탐방센터로 내려옴. 25,177보
* 한양 배움의 길
1. 인수봉(仁壽峰)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형 비류와함께 올라 도읍을 정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봉우리.
산 전체의 형상이 마치 어린 아이를 업은 듯하다하여 부아산(負兒山) 또는 부아악이라 불리운다. 깍아지른 약 200m의 화강암 암벽 봉우리는 전문 산악인들의 암벽 훈련장으로 인기가 많다.
※ 목숨을 걸고 암벽을 오르는 산악인들의 기개는 도읍지를 정한 온조의 뜻보다 더 높다. 난 지금까지 살면서 목숨 걸고 사랑한 山, 사람(人)이 있는가?
2. 삼각산을 詩로 읊은 두 사람, 김시습과 이성계
(김시습)
높은 삼각산 봉우리 하늘을 찌를 듯
그 위에 오르면 북두칠성도 딸 수 있어
비구름을 불러 일으키는 저 봉우리
왕실을 만세토록 평안케 하리로다.
(이성계)
넝쿨 움켜쥐며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흰구름 가운데 암자 하나 걸려 있네
눈에 보이는 곳 우리 땅으로 한다면
오월의 강남 땅도 그 속에 있으련만.
※ 새 나라를 세운 무인과 문장에 뛰어났던 문인의 비교되는 詩이지만 백운대를 찬양하는 시상은 똑 같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