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산행 #6(2023. 3.25, 토)
오늘은 한양의 동북 태능골에 있는 불암산(508m)으로 가는 날이다. 전철안에서 정채봉의 詩를 읽어본다.
"삶에 고통이 따르는 이유/정채봉
생선이
소금에 절임을 당하고
얼음에 냉장을 당하는
고통이 없다면
썩는 길밖에 없다."
오늘은 추억의 산행이 될 것 같다. 처음으로 정상까지 오르는 불암산은 모교 화랑대 옆에 위치한 산이기에 산행을 하는 동안 4년간 교육을 받으면서 차곡차곡 쌓였던 옛 추억이 떠오를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화랑대역에 도착하니 경춘선 숲길(둘레길인가 보다)을 걷고자 하는 산행객들이 많이 모여 있다. 여자 산행객들의 울긋불긋 옷 차림은 봄을 더욱 화사하게 만든다.
태능 솔밭과 먹골배 과수원은 온데 간데 없다. 45년 세월이 흘렀으니 그럴 수 밖에.. 그래도 아련한 추억은 가슴에 남아 있다. 77년 겨울에 2차 시험(체력검증과 면접)을 치루기위해 하루 밤을 잤던 학교정문 앞 여인숙(은성, 은하?), 태능 도로에서의 마지막 달리기 연습..
그때 교복 입은 사진 한 장도 나의 앨범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78년 2월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땐 훈련의 막바지에 분대장 생도의 인솔하에 불암산 중턱까지 오른 적이 있다. 힘들었던 훈련기간 중 유일하게 야외 소풍 기분을 느낀 시간이었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군기가 바짝 든 얼어 붙은 모습이 아니고 얼굴에 여유가 있는 군기 빠진 모습이다. 흰 배꽃이 아름다운 태능 과수원에서의 미팅도 아름다운 추억이다.
두더쥐 생도 1학년때 경춘선을 달리는 기차의 기적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중대 내무반 불침번을 설 때 소쩍새 우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던 경춘선 기차 소리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나를 울컥이게 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정채봉의 詩처럼 썩지 않은 고통이었기에 다행이었다. 군인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은 잠깐의 고통, 시련이지만 영광의 길이다. 어제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서 호명된 55명의 용사들, 조국의 바다를 지키다 산화한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사나이며 영웅들이다.
산행은 불암산 등산 9개 코스중 제일 긴 제 9등산로로 오른다. 편도 약 6Km이기에 정상에 올랐다가 수락산까지 가지 않고 정상에서 상계역 방향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원점회귀 하기로 했다. 정상에서 모교 화랑대와 지난 주에 올랐던 백운대만 바라 볼 수 있음 만족이다. 날씨가 쾌청하지 못하다. 그래도 진달래는 활짝 피었다.
정상에 서니 태극기가 휘날린다. 6.25때 군번도 없는 생도의 신분으로 의정부와 포천을 넘어오는 적을 맞아 싸우다 산화하신 선배들의 혼백을 보는 듯하다.
평화는 힘으로 지켜지는 것이다. 굳이 유명 역사가의 명언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류의 흥망을 지배해 온 전쟁의 사례들을 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구걸한 평화, 말로만 외치는 허울 좋은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지난 5년 동안 평화를 외칠때 북은 핵고도화로 답했다. 핵전쟁을 불사하겠다고 노동규약에 명시한 북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으면 우리의 자유도 평화도 보장 받을 수 없다.
불암산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금강산에 있었던 불암산이 한양의 남산이 되고 싶어 달려 내려오다 선점한 지금의 남산으로 인해 금강산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현위치에 머물렀다고 한다. 매사 인간사는 하늘의 뜻이 있고, 시와 때가 있는 법이다. 머뭇거리지 말고 결심하고, 결심한 것은 꾸준히 실천해 나가면 보람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적의 총탄에 한 치도 머뭇거림없이 방아쇠를 당긴 우리 서해의 용사들, 그들을 기린 나의 하루 산행길로 기록되면 좋겠다.
* 화랑대역~삼육대 갈림길~헬기장~깔딱고개~거북바위~정상~화랑대역 원점회귀, 21, 800보
* 한양 배움의 길
1. 불암산성(佛巖山城)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 3호다. 신라가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으로 '大東地志'에 "검안산(불암산) 고루는 선조 임진년에 의병장 고언백이 쌓은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후대에 개축했음을 알 수있다. 평탄한 정상부를 돌아가면서 자연지형을 따라 쌓았는데 성의 둘레는 약 236m, 성 내부면적은 약 5,322제곱미터이다. 규모는 작지만 삼국시대 전형적인 축성기법을 보여주는 산성으로 인근의 수락산 보루, 봉화산 보루와 함께 한강을 중심으로 삼국의 각축 양상을 보여준다.
※ 군데군데 허물어진 성벽을 보니 지난 5년 안보공백기에 스스로 무너뜨린 낙석장애물 등 전방지역 주요 방호벽들을 보는 듯하다.
2. 불암산의 전설
전설에 의하면 불암산은 원래 금강산에 있던 산이라고 한다. 어느날 불암산은 조선왕조가 도읍을 정하는데 한양에 남산이 없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가 남산이 되고싶어 금강산을 떠나 한양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지금의 불암산 자리에 도착하여 보니 한양에는 이미 또 다른 남산이 들어서서 자리 잡고 있었다. 불암산은 되돌아 갈 작정이었으나 한번 떠난 금강산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돌아선 채로 그 자리에 머물고 말았다. 이 때문에 불암산은 서울을 등지고 있는 형세이다.
※ 인생을 살면서 중대한 결심은 한 번이면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