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림
함양 상림은 외로운 구름(孤雲) 최치원이 태수로 재직시 수해를 막고자 만든 인공조림의 숲이다.
약 13㏊에 이르는 넓고 깊은 숲은 함양읍내를 가로지르는 하천 둑을 따라 천 년 이상의 시간을 함께 했다. 2만여 종의 식물들이 어우러지는 숲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원시의 모습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빚어졌기에 인간의 땀과 숨결, 걸음이 숨어 있는 역사의 공간이다.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등 조선 사림의 거두들은 이곳에 정자를 짓고 문장을 즐겼다. 숲은 더욱 커졌을 것이고, 고을의 백성들도 수해를 막아준 숲을 사랑했을 것이다. 징검다리 하천을 건너온 청춘 남녀들은 이곳 숲에서 사랑을 키우고 결혼도 했을 것이다.
상림은 사람이 만든 자연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짙은 녹음과 가을 홍엽도 아름답지만 지리산이 두꺼운 눈으로 덮히는 겨울, 눈꽃이 하천 둑으로 휘날리는 상림의 풍경은 비상하는 鶴아래 고고하게 걷고 있는 선비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점필제 김종직이 짚신 신고 밟았던 지리산 아래 고을 함양이기에 그러한 연상을 하는 것은 아닐까. 점필제의 산행기록 유두류록.. 지금도 지리산을 사랑하는 분들은 그가 올랐던 길을 탐방하면서 산과 역사의 깊이를 심화시킨다.
점필제 生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 하나.
1471년 함양군수로 부임한 김종직은 관내의 정자에 유자광이 쓴 詩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그 따위 자광(子光)이 감히 현판을 걸었단 말이냐”며 즉시 명하여 현판을 거두어 불태워버렸다. 이 사건은 1498년 무오사화를 주모한 유자광이 김종직에게 복수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이 스승의 글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음으로써 비롯된 무오사화..
학문과 권력의 정적간 피의 부름이 계속된 조선의 사화 역사는 이곳 상림을 만든 최치원의 정신과는 너무나 동떨어진다.
상림은 애민정신의 산물이다. 일찍부터 唐에서 최고의 학자로 인정받았고 뜻이 높았던 최치원이 골품 신분제로 인해 중앙정치에서 배제되어 지방관으로 부임해왔지만 학자로서의 그의 뜻은 꺽이지 않았을 것이다.
상림의 고목 하나하나를 보면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 말년에 세속을 떠나 학문에만 심취했던 고운이었지만 그의 뜻은 죽지 않고 더 고고했으리라..
일생동안 유·불·선 통합을 시도 했던 그의 삶, 융합의 정신 세계를 보는 것 같아 사뭇 엄숙해진다.
상림 숲을 거닐면서 상상하고 단정해 본 나만의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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