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강구
어제 청송 주왕산을 걷고 20대 후반 옛 추억의 장소인 江口로 왔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청송에서 40분이면 족하지만 달산, 얼음골폭포, 옥계를 거치는 옛길을 택했다. 과수가 여물기 좋은 따가운 햇살아래 청송 사과밭이 줄지어 있다. 작년에 수확한 사과를 큰 냉동창고에 보관하면서 길 가는 사람들에게 판매하고 있는 분의 손짓에 사과 1박스와 사과막걸리 2병을 샀다. 해빙이 안되도록 냉장고에 보관하면서 먹어야한다고 했고, 더운 날씨라며 시원한 사과즙 팩 4개를 덤으로 주신다. 올 농사도 수확기에 자연재해 없이 대풍을 이루면 좋겠다.
옛 추억의 한 조각. 1987년으로 기억된다. 탄산약수로 우러낸 달산의 닭백숙을 먹기위해 90CC 오트바이 뒤에 아내와 큰애를 태우고 영덕 고개길을 넘어 왔던 그 때. 힘이 부친 오트바이를 나는 끌고, 아내는 애를 업고 걸어서 넘었던 고개. 힘들었지만 맛이 깊었던 약수 닭백숙이었다. 지금은 역으로 산에서 바다로 가는 길이다. 세월도 역으로 흘렀음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원한 얼음골 폭포, 옥계 계곡을 넘어 강구에 도착한다. 못 보던 강구역이 생긴 것을 보니 부산에서 속초 너머까지 7번 국도와 함께 달리는 바다기차길도 곧 열릴 것 같다.
장사해수욕장 솔밭에 위치한 대대본부 예하 해안경계 중대장으로서 강구 하저마을에 첫 발을 디디면서 시작된 바닷가 생활, 큰애가 백일이 지날 무렵이었다. 어촌 마을 대문도 없고 숫가락으로 창호 미닫이 방문을 걸어잠그던 월세 방 한칸, 중대 행정보급관이 그나마 나은 집이라고 소개해주어 이불보따리를 풀었던 집이었다. 멍게 양식장을 하신 집주인 김실광 어른의 얼굴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자주 꺼지는 연탄불을 갈아주시고 멍게를 한바께스 가득 담아 먹어보라며 주시던 그 모습.
큰애 첫 돌을 지낸 그 하저포구 집은 지금 번듯한 펜션으로 변해 있다.
야간엔 통행금지 되고 출입항하는 어선도 일일히 통제되던 그 시절, 아내는 간첩이 나타날까 무서워 바닷가도 제대로 걷지못했다고 했다. 그래도 용기내어 큰애를 업고 해무가 짙게 드리운 모래밭을 거닐며 자장가를 불러줄 땐 큰애가 좋아서 콩닥콩닥 몸을 흔들었다고 했다.
아련한 추억의 장소, 수많은 사연이 담긴 그 시절. 오늘은 여기저기를 둘러 보고 마지막으로 창포 해맞이 공원에 섰다. 이곳의 상징인 영덕대게 등대, 해풍으로 풍력 발전을 하는 날개짓, 청춘남녀가 손가락으로 사랑을 약속하는 바위, 병사들의 경계초소의 흔적, 힘차게 나는 갈매기들..
39년의 세월이 쏜살같이 흘렀다. 첫 자식의 생명과 함께한 강구 바다.. 아들, 며느리를 데리고 다시 찾을 날이 있을 것이다. 바다를 보면서 뜻을 세우기보단 하는 일에 소명을 가지고 정갈하고 깔끔하게 살아가는 아들 부부의 삶이면 좋겠다.
풍요로운 동해바다가 미래 환동해시대를 활짝여는, 우리의 동력과 꿈을 멀리 태평양까지 실어나르는 힘찬 희망의 바다가 되어 줄 것으로 믿는다.
20230618,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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