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남조
1979년 겨울이었다. 생도 1학년 나의 일기 한 구석에 그 분의 詩, '너를 위하여'를 썼다. 생도의 딱딱한 하루 일상만 기록하는 무색의 일기 노트에 왜 그 분의 그 詩를 옮겨 썼는지 그때의 상황과 감정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눈이 내리는 추운 날, 내무반 스팀의 열기마저 식어간 취침을 앞 둔 시간에 후딱 그 詩를 적었던 것은 적응해야했던 미지의 세계에서 춥고 힘들었던 두더쥐 생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녹여봤으면 하는 바램이었는지도 모른다.
시인이 별세하신 후 일기를 펼쳐보고 이 페북 공간에 고인의 詩를 다시 기록해 보는 것이 예의에 벗어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다.
나의 일기 한 구석을 차지한 그 분의 종교적 경건함과 지상에서의 사랑이 그 詩를 통해 내 가슴에 다시 피어나는, 나에게 주신 귀중한 추억의 선물이었음에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1951~53년 저의 마산고 모교에서 교사를 역임하셨다는 사실에 당시 저는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선배들에게 詩心을 심어주신 고마움과 훌륭하신 은사를 두신 모교에대한 자긍심도 가져보게 된다.
너를 위하여 / 김남조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을 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 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96년 생을 사시면서 약 1,000편의 주옥같은 詩를 남기고 떠나시면서 어느 날 하신 말씀이 아름다운 詩 이상으로 깊은 감명과 긴 여운을 준다.
"나는 시인이 아니라 詩를 구걸한 사람이다. 백기들고 항복이라며 굴복한 일 여러번이다 "
시인의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닫고, 감동하신 그 삶의 의미심장함과 겸허한 인생이 묻어있는 그 많은 詩는 오늘을 어리석게, 더디게, 무감동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귀한 말씀을 주는 것 같다. 무언가를 보고, 무언가에대해 생각이 들면 그 보고, 느낀대로 순수하게 인생 소풍 잘 즐기고 오라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고인의 생전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20231011, Song s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