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해맞이(2024.1.1, 월)
한 해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흘러보낸 시간들이 아쉬워 어젠 페북에 담겨져있던 지난 1년 동안의 흔적들을 더듬어보고, 친구들과 덕담이란 미명하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느라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한 해동안 묵은때, 찌든때를 씻어내고자 했던 회고와 소통은 눈의 피로와 함께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손가락 행위. 새해부턴 '접속'보다 '접촉'을 가까이하자고 마음 먹으면서 잠을 청했다.
서너 시간 정도 잤나? 甲辰年 첫 날 05시 40분에 집을 나섰다. 팽성부터 삽교방조제까지 짙은 안개가 덮혀 비상등을 켜고 달린다. 다른 차들도 마찬가지. 추월은 엄두도 내지 않고 차로를 지키며 조심조심 서행한다. 송악IC 부근에 이르러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통행량도 줄어들었다. 당진 현대제철소로 새벽 출근하는 차들이 많았던 모양. 서해 일출명소인 왜목마을을 지나면 삼길포다. 왜목 입구엔 변함없이 차량들이 긴 줄을 서고 있다. 난 작년에 이어 조금이라도 사람 적은 삼길포로.. 집에서 1시간 20분 정도의 거리인데 안개때문에 20분 더 소요되었다.
올해 삼길포 해돋이 시간은 07시 42분으로 작년보다 7분이 빠르다. 날씨가 너무 흐려 해를 보려면 더 기다려야한다. 이를 아는 듯 방파제와 선착장 주위에 모여 있는 해맞이객들은 삼길포 주민회에서 봉사하는 떡국행사에 먼저 참석하는 등 여유 있는 행동들이다.
삼길포는 갯벌을 품고있지만 수심이 꽤 깊은 곳이다. 포구 뒤엔 중대규모 부대가 위치할 정도로 감제 관측이 가능한 산과 둘레길도 있어서 시원한 서해 조망을 보면서 걸은 적도 있다. 우럭 산지로도 유명하여 수산물 센터가 있고 선상 횟집도 운영된다. 바다위를 바쁘게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은 어족이 풍부한 이곳에서 긴 세월동안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든 것을 함께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새해 찬바람이 물결을 일렁이고 있는데 해는 아직 얼굴을 내밀 생각을 하지않는다. 흐린 날씨 때문이다. 07시 59분, 예상 일출시간보다 17분 늦게 붉은 해가 구름속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이 시간은 정확하게 작년 해돋이 시간과 같다. 내가 한 눈을 파는 사이에 이미 솟아오른 몸이 잠깐 얼굴을 내민 것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핸펀으로 첫 컷을 찍고 시계를 보니 작년과 동일한 시간이었다. 큰 의미는 없지만 해는 변함없이 떠오른다는 것, 검은토끼의 해든 푸른용의 해든 솟아 오르는 해는 변함없이 붉은 빛이라는 것.
이번 해맞이엔 방학을 맞이하여 집에 온 막둥이가 함께해서 좋았다. 잠을 더 자려고하는 막내를 신년의 꿈을 품게 해주고자 데려왔는데 해맞이를 하면서 나름의 새해 계획은 세웠는지 모르겠다. 올해로 나이 한 살 더 먹어 25세가 된 막둥인 나에게는 아직도 얼라(어린 아이)라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이런 나의 생각을 알고 있는 아들은 나를 꼰대같은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깊은 소통이 부족하기에..
그래도 해맞이 감동을 함께 가진 아들이 마을 주민들이 내어 놓은 따뜻한 떡국 한 그릇에 세상 인심과 사랑을 느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귀가길에 들런 해오름 카페에서 귀한 신년 톡 글을 본다. 인산편지 Academy와 세미책운동을 추진하는 인산 김인수 작가의 신년 인문학 구상에 관한 글이다.
문학을 통한 사유와 통찰, 책읽기 운동을 통해 명실상부한 인문학 광장을 열어
인간의 삶을 깊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싶다는 김작가의 포부이다. 구체적인 실천(안)을 제시하고 있다.
해맞이 명승지가 아닌 조용한 곳에서 맞이한 갑진년 해돋이. 많은 사람들은 뜨는 해를 조금 일찍 보기위해 동해안 명승지로 달려간다. 사람사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해가 뜨는데..
조금 늦으면 어떠냐, 유명하지 않는 곳이면 어떠냐. 살아가는 방법도 마찬가지. 책을 가까이 하면서 사유와 성찰의 기회를 갖는 것이 소중할 것 같다. 해야만 하는 무대인 군에서 하고싶은 무대인 사회로 나온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역사기행과 인문학 공부의 기회가 주어지는 이 광장에 서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든다.
갑진년 해맞이의 길에서 가져본 감흥과 생각이다. 새해 꿈이다.
20240101,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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