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난 이 책(물로 씌어진 이름, 전 5권)을 읽기 전 섣부른 독선감과 읽으면서 독중 단상의 글을 썼었다. 특히 독중 단상에선 이 책을 다 읽고 소감을 밝히신 배진영 월간조선 편집장의 글을 소개한 바도 있다. 그 분은 이 책이 "독립운동가로서, 민족지도자로서 우남
이승만의 고초와 고뇌를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우남으로 하여금 그런 고초와 고뇌를 하게 만든 그 시대의 역사를 그려내고자 한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렇다. 오늘 5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나에게도 똑같은 느낌이 다가왔다.
이 책에선 이승만이 한성감옥을 나와 1904년 겨울에 민영환과 한규설의 밀서를 가지고 제물포에서 미국을 향해 배에 오른 이후 해방이 되기까지 40여 년의 미국 망명 생활은 이승만 개인의 역사가 아닌 세계사 그 자체였다고 말하고 있다. 대한제국의 유민이 해방되고, 반도의 남쪽에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건국되기 전까지 국가간 세계 대전, 체제와 이념의 충돌, 역사의 결정적 고비를 이끈 정치지도자들, 그들 밑에서 식민지 국가 운명을 결정지은 실무 참모들, 인간성이 무참하게 파괴되는 전쟁의 참상, 정의와 불의의 세계는 물론 중요 국제협약과 대외 정책속에 내재된 갖은 음모와 술수(특히 얄타 비밀협약), 정보 조직의 공작 등 세계사의 흐름을 결정짓는 인물들과 사건들이 그려진다.
이승만은 그러한 세계속의 한 인물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세계의 움직임에 누구보다도 앞선 통찰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2차세계대전이후 공산주의 득세도 간파했다.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 히틀러, 장개석, 트루먼 등 당대의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평가도 냉정했고 그들의 속도 훤히 내다보았다. 돈이 없어 힘든 망명생활을 하면서 미 정부와 치열하게 싸웠다. 그랬기에 해방과 6.25전쟁을 치루는 동안 미국을 다룰줄 알았다.
그는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을때 독일과 일본중 어느 쪽이 먼저 패망하느냐에 따라서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보았다. 일본이 독일보다 오래 버티면 조선은 러시아의 식민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해 아는 것 없이 들떠서 설치는 미국의 지식인들과 달리 그는 조선에서 제정러시아의 행패를 체험했기에 이러한 혜안을 가질 수 있었다.
책은 2차 세계대전의 주요 격전지 전투사도 아주 상세하게 소개한다. 직업군인이 아니더라도 전쟁속 인간의 여러 군상들을 접하면서 전쟁의 본질을 이해하게 된다. 난징 대학살, 나찌의 홀로코스트, 여성의 인격을 말살시킨 군공창, 태평양 군도에서의 일본군의 집단 자살과 가미카제, 소련군의 독일여성에대한 무통제의 집단강간 등을 통해 인간성이 어디까지 파괴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없게 만든다.
책 5권의 중간쯤 독일이 항복한 1945년 5월 8일 이전 히틀러와 괴벨스의 자살과 함께 그려진 베를린 거리의 한풍경. "1945. 4. 26일 베를린에 비가 내렸다. 배급소에서 여인들은 버터와 마른 소시지를 받기위해 줄을 섰고, 사내들은 독한 술을 배급 받으려고 줄을 섰다. 여인들은 전쟁의 고난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줄을 섰고, 사내들은 전쟁의 악몽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줄을 섰다".
책을 읽은 후 체제와 이념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전체주의는 지도자가 정한 목표에 모든 사회적 역량을 집중하는 체제다. 따라서 객관적 진리나 도덕이 존재할 수 없고 지도자가 정한 목표의 달성에 이바지하면 그것이 진리고 도덕이다".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좌파는 "목적을 위해선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정당화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파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리버럴 체제하 개인보다 국가책임이 강조되는 다소 경직된 이념을 가진 집단이다"고 나름 정의해본다. 맞든 안맞든 개인의 생각이니 비판받을 이유도 없다.
전체 5권의 책이지만 일독을 권해본다. 난 어느 페친의 말씀대로 천천히 메모하면서 읽다보니 겨울이 지나고 입춘을 맞이하면서 완독했다. 다소 과장된 표현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부족한 사실 인식은 다큐영화 '건국전쟁'을 통해 보충할 생각이다. 영화가 나온 시기에 독서를 끝냈다는 것이 어쩌면 다행이고 나에게 준 상(賞)이라 생각한다.
이승만이라는 한 인간보다는 그 시대가 얼마나 암혹한 시대였는지, 이미 망해 버린 이름도 없는 약소국의 망명객이 짊어져야 했던 시대의 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이었는지, 건국과 나라 기초를 다지기위한 그의 행적(농지개혁, 6.25전쟁 극복)을 알고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배진영 편집장의 소감대로 망망한 역사의 바다를 항해한 듯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20240204,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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