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 걸음의 시작
지난 1월 17일 고향 친구들과 몽촌토성을 걷고 나서 올해는 시간이 나는 대로 서울둘레길(8개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을 걸어보자고 했다. 오늘 그 첫 걸음으로 양재 시민의 숲에서 청계산 입구까지 걸었다. 이 길은 서울둘레길 코스는 아니지만 둘레길 걸음을 위한 시작의 의미가 있다.
한양 4대문과 도성을 넘어 한수(漢水)를 가로지르고, 한양을 품고 있는 외곽산들을 이어 원(圓)의 모습으로 만든 서울둘레길은 서울이 나라의 중심임을 알리는 길이다. 북한산, 관악산, 구룡산, 아차산 등을 포함하여 산과 물을 연결한 서울둘레길은 마치 신체에 없어서는 안 될 말단의 실핏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외국인들도 "깊고 아름다운 서울둘레길을 걸으면 진정한 한국의 美를 발견한다"고 했는데 난 6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았서도 8코스 전체 둘레길을 이어 걸어본 적이 없다.
우린 꽃샘 추위가 계속되는 날씨에 양재 시민의 숲에 모였다. 먼저 매헌 윤봉길 의사 동상 앞에서 묵념하고 사진을 찍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상해 홍구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으로 거사 후 日 가나자와 교도소에서 순국하기까지 윤의사의 짧았던 24년 생을 되새겨보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풍요는 지나친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윤의사의 의거는 동북아 전체를 뒤흔들었다. 어느 중국인의 詩가 이를 잘 말해준다.
"太極旗下正氣如虹
多君三千萬衆
春申江上巨彈殲敵
愧吾四百兆民
태극기 아래 바른 기운은 무지개처럼 빛나네.
조선에는 군자가 많다 해도 3,000만인데
봄날 상하이 황포 강변에서 거대한 폭탄으로 적을 섬멸하니
우리 4억 중국인을 부끄럽게 하는구나"
7년 전에 가나자와 윤의사 암장터를 다녀온 사학자 친구의 분노도 생각났다. 친구가 나에게 찍어 보내준 4장의 가나자와 현장 사진을 난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당시 일본군은 윤의사를 처형 한 후 시신을 화장했다고 신문에 보도했지만 사실은 가나자와 교도소 근처 노다산 쓰레기 소각장으로 가는 좁은 길목에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암매장했다.
윤의사의 의거로 상해임시정부의 존재를 만방에 알리고, 이후 장개석 총통이 우리의 항일투쟁에 큰 재정적 지원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늘 이렇게 매헌 시민의숲길을 걸으면서 윤의사의 기개와 멸사봉공의 숨결을 조금이라도 느껴본다.
매헌숲을 걷고 천변을 따라 내곡동을 거쳐 청계산 입구까지 걸었다. 4월의 천변은 벚꽃이 아름답다는데 오늘은 물오리들이 실개천에서 봄을 맞이하고 있다. 청계산 옛골까지 온 것은 둘레길 걸음을 청계산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하는 친구(수명)의 계획인 것 같다. 서울을 한바퀴 휘감아 도는 총 157Km의 둘레길엔 어떤 스토리가 담겨져 있을까? 자연생태계는 물론 역사,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자연의 느림과 여유도 누릴 수 있으리라.
친구는 말한다. "오늘은 가벼운 시작의 예비 단계로써 코스 순서가 바뀌더라도 한양 한바퀴를 돌면 목표는 달성되는 것이기에 날씨와 형편을 봐 가면서 걷기 보름 전에 그 날의 계획을 단톡방에 공지하겠다"고. 벌써 4 월의 첫 코스 걸음이 기다려진다.
전국 산을 다 다녔고, 매년 단독 해외트레킹을 하는 친구는 2년 후에 우리 모두 뉴질랜드 남섬에 있는 '밀포트'와 '마운트 쿡'을 가자고 한다. 자신은 이미 다녀왔지만 한 번 더 가고 싶단다. 그리고 남아메리카 최남단에 위치한 지구에서 유일하게 오염되지 않은 곳, 파타고니아도 가고싶다고.. 산에 모든 것을 바치고 매일 만보 이상 걷고 있는 진정한 산사나이, 걷기사랑자가 있어서 우린 편하게 산행과 트레킹을 즐기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20240309,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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