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保寧)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류시화의 시(詩), '소금인형'이다.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드는 일, 그것을 사랑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 같다. 또 이 세상에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누군가, 무엇인가 나를 위해, 싱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소금인형'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짠 소금인형을 알기 위해, 바다의 깊이를 느끼기 위해 보령으로 간다. 지난해 1월 29일엔 보령 광천읍에 위치한 오서산(烏棲山)에 갔었다. 충남의 등대로 서해바다에서 도드라지게 보이며 산 능선을 따라 군락을 이룬 억새가 무척 아름다운 산이었다. 겨울이었기에 하얀 눈이 덮힌 쉰질암이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도 참 눈부셨다. 그때 받은 감흥을 읊은 졸시는 나의 블로그에 담겨져있다.
보령은 국제 머드축제로 유명하고, 최근에는 대천항과 오천면 원산도를 잇는 해저터널도 생겼다. 점점 유명세를 타는 보령, 오늘은 산이 아닌 바다의 짠 내음을 맡으러 간다.
보령에서 제일 아래쪽에 위치한 무창포로 먼저 간다. 낚시배들이 정박해 있는 작은 포구, 맑은 모래 빛깔의 해수욕장, 멀리 고래의 등 같은 모습의 섬, 시원한 바닷바람, 그리고 '상화헌'이란 이름을 가진 고풍스런 북카페가 있다. 이곳에선 3월 23일부터 4월 13일까지 주꾸미 축제가 있었다. 축제가 끝나 가격이 조금 내려간 주꾸미 샤브샤브로 점심 시장기를 해결하고 무창포 바다 내음을 마음껏 들이켜본다. 류시화 시인의 소금인형이 들이킨 세상의 깊이 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고상한 짠내를 맛본다. 고옥(古屋)의 북카페 상화헌이 홍상화 작가의 집필 공간이었다는 사실에 그 짠 향기가 더 짙다.
대천으로 나오는 길에 외로운 구름(孤雲) 최치원의 흔적이 있는 곳을 들러본다. 남포 방조제가 생기기 전엔 맥도(麥島, 보리섬)로 불린 섬이 지금은 육지가 된 곳인데 고운이 전국을 유람하면서 이곳에 들러 바위에 한시(漢詩)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
민들레가 흐드러지게 핀 공간에 고운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표지석(읽기 어려운 유명 서예 작가의 글이 새겨져 있다)이 예사롭지 않다.
鶴無春池月
鶯啼碧桂風
(학이 춤추는 봄의 연못에 달이 비추고, 꾀꼬리 우는 벽계수에는 바람이 분다)
고운이 경치가 아름다운 이곳에 머물며 한시(漢詩)를 새겼다고 전해지는 8개의 바위는 높이 3m, 넓이 1.8m 정도 되는 병풍 모양이다. 역사의 진(眞) 모습을 보고자 아무리 살펴보아도 글자 흔적을 발견 할 수가 없다. 오랜 세월이 글자를 마모시킨 것이다. 대신 고운의 높은 뜻을 새기고자하는 후세인이 고운의 한시를 바위옆 기념석에 새겼다.
秋夜雨中
秋風唯苦吟
가을 바람에 괴롭게 시를 읊노라
世路少知音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가 드물구나
窓外三更雨
한밤중 창밖엔 비가 내리는데
燈前萬里心
등불 앞에 있는 마음은 만 리 밖을 달리네
최치원의 심정이 짠하게 전해오는 것 같다. 신라의 골품제 때문에 꿈이 좌절된 6두품 지식인 최치원의 그 심정. 당대의 세상은 뜻과 이상이 원대했던 인물을 알아주지 못했다. 정치에 등을 돌리고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산천을 주유한 천재의 마음 한 켠에는 어떤 짠 내음이 스며 있었을까. 좌절속에 마음의 본향을 그리워한 그 삶의 짠 내음을 내가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대천해수욕장 긴 모래밭을 한참 걸어본다. 용암이 흘러내린 일본 이즈반도 죠가사키 해변은 물빛, 바위, 모래 모두 검었으나 이곳 대천 해변은 눈이 부시도록 맑고 희다. 파도에 실려오는 짠 바다내음을 마음껏 마셔본다. 해마다 국내외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머드축제는 자연을 사랑하며 아끼고, 창조를 중시하는 인간 정신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뻘에 온 몸을 던지는 축제에도 찐한 땀 냄새가 베여있는 것이다.
해저 80m 깊이에 건설된 보령 해저터널을 왕복으로 달린 후 주포면 보령리에 위치한 보령읍성으로 향한다. 주포면 지역은 351m의 진당산을 주산으로, 고남산과 천마산을 안산으로, 봉당천이 남쪽으로 흐르고 있는 명당지로 소문난 곳이다. '오성지간(오서산과 성주산 사이)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之地)'라며 예부터 국가반란이나 천재지변에도 큰 재해가 없었던, 만세보령의 본 고장으로 알려져있다. 백제 때는 신존현, 통일신라 때에는 신읍, 고려 때에는 보령현, 조선시대엔 보령군이라 했고 1914년 군청이 대천으로 옮겨가자 주포면 사무소 소재지가 되면서 읍성이 있었던 곳을 보령리라 불렀다.
읍성과 관아문(관아가 있었던 공간엔 초, 중학교가 들어섰다)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보령읍성은 1430년(세종 12년) 순찰사 최윤덕이 현재의 위치에 터를 잡고 보령현감 박효성, 서산군수 박눌생 등이 힘을 합하여 완성한 석성(石城)이다. 성내엔 3개소의 우물, 성문 3개소, 옹성 2개소가 있었다. 읍성의 관아문인 해산루(海山樓)의 현판 글은 보령 출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가 쓴 것으로 전해진다.
보령 관아문은 보령현의 치소(治所) 역할을 하였던 보령성곽의 남문이다.
보령현은 고려시대부터 붙여진 이름이며 조선시대에는 인근 오천면에 있었던 충청도 수군절도사영과의 지휘관계에 따라 보령부(保零府)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오천항을 내려다보는 수려한 경관을 가진 조선시대 서해안 수군 최고사령부인 충청수영성에 가보지 못한 점이 조금 아쉽다.
30여 년 전 큰애와 둘째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데리고 왔던 대천해수욕장. 오늘은 류시화의 詩를 읽고 자연과 역사의 진한 냄새를 맡으며 그 깊이를 재기 위해 찾은 충남 보령.
무창포, 예전의 맥도(보리섬), 대천해수욕장, 해저터널, 보령읍성만 보고 어찌 보령의 속살 모두를 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소금인형처럼 그 흔적도 없이 녹아버린 깊은 바다는 아니었지만 옛날의 추억을 되살려주고 역사의 피속으로 뛰어들고자한 한나절 보령 발걸음!
20240427,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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