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봄 삼구회 정모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사람을 살리는 3대 산으로 지리산, 덕유산, 소백산을 꼽는다. 많은 명산들 중에서 왜 이 3산을 그렇게 부르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직접 발로 밟은 분들의 평가이기에 그 느낌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 우린 6월의 더위가 오기 전 고향과 수도권에서 딱 중간 위치에 있는 소백산을 택했다. 죽령 넘어 영주에 잠자리를 정하고 소백산 자락길을 걷고 부석사의 멋을 느껴보기로 했다.
참석이 가능한 16명의 친구들이 6개월만에 모였다. 선비의 고장 영주에서 3끼 밥을 함께 먹으며 부석사 탐방과 소백산 자락길 걸음을 통해 이 고장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곳'이라는 느낌을 가져가면 좋겠다.
첫날 오후, 유서깊은 부석사에 왔다. 전국 유명 산과 사찰을 모두 섭렵한 산행대장의 첫마디는 '수많은 사찰 중에 여기에 오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 이유를 물으니 '무량수전과 3층석탑에서 바라보는 백두대간의 장엄함 때문이다'고 답변한다. 누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봉황산아래 이 부석사엔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염원)가 담겨있기에 천하 제일의 명당자리가 될 수 있었다'고. 또 누구는 '염원을 통한 발복보다는 오랜 세월 사찰에 쏟은 정성 때문이다'고.
우린 무량수전옆 나무 그늘에서 불교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친구의 강의를 듣는다.
"무량수전 앞 누각, 安養樓에서 안양이란 서방 극락정토를 이르는 말. 서방극락정토의 교주는 아미타불로서 부석사는 아미타불을 모신 사찰.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부석사를 건립하였는데 의상은 당에서 공부하다 선묘 낭자를 만났다. 의상을 사모한 선묘 낭자는 의상의 신라로의 귀국길에서 바다의 용이 되어 대사를 보호했고, 부석사를 건립하는 과정에서도 반대 세력을 물리치며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리고 불교의 종파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대부분이 조계종인 우리나라 불교에서 부석사를 건립한 의상은 화엄종파로 화엄경을 가르쳤다. 의상은 광대무변한 화엄경(총 글자수가 10조 9만자가 넘는다)을 단 10권으로 축약하고, 그 마저도 210자로 핵심 내용인 법성계로 정리했다.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의 모든 현상은 연기(緣起), 즉 생기(生起)와 소멸(消滅)하는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 법성계의 핵심 내용. 그래서 세상을 살면서 고해(苦海)의 원인을 짓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친구의 강의에 우린 박수를 치고 경내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시간적으로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아 원했던 저녁노을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펜션에서 친목을 다지는 식사시간에도 대화는 끝이 없다. 낮에 접했던 불교 사상을 두고 자연과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친구와 토론이 이어진다. 불교의 핵심 교리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即是空 空即是色)'을 두고 색즉시공은 이해되는데 공즉시색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우주 법칙과 세상이치의 본질을 깨치지못한 부족한 인간이 어찌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
소백산 자락길을 걷는 날, 아침 5시에 눈을 떳다. 소백산 자락길은 모두 12자락, 143Km 거리다.
우선 펜션 부근 금계저수지 2자락길 일부를 산책 삼아 걸어본다. 식사 후엔 소수서원에서 시작되는 1자락길 한 구간(구곡길, 7Km)을 걸을 예정이다. 산책길에서 걸음의 중요성에 관한 명언을 발견한다. 큰 표지석에 '소백산 자락길은 종합병원이요, 당신의 두 다리가 의사입니다'라고 새겨져있다. 자락길 뿐만 아니라 둘레길(지리산), 올레길(제주도), 마실길(변산), 순례길(백담사~봉정암)을 걸으면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소수서원에서 시작되는 죽계구곡길을 걸어본다. 죽계구곡길은 국망봉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이 산굽이를 돌 때마다 절경을 이루는 곳으로 퇴계가 계곡의 풍취에 심취되어 아홉구비를 헤아려 이름을 붙였다. 9곡에서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짓기전 터전을 보러다닐 때 초막을 짓고 임시 기거했다는 초암사를 지나 1구곡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걸음이다.
녹음이 짙고 계곡물이 세차게 흐르는 길이 참 좋다. 짙은 찔레꽃 향기가 코를 찌르고 목단 나무도 가끔 보이는 아름다운 계곡길이다. 근원이 멀고 깊은 물이 여울져 흐르는 여울목을 바라보면서 본원지수(本源之水)의 마음을 가져보려 애쓴다. 마음을 씻어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류시화는 그의 詩에서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고 했다. 최고의 善은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삶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소백산을 사랑한 서거정이 노래한 詩가 표지판에 새겨져있다. 번역하면 이렇다. '소백산이 아득하게 태백산에 이어져 있는데 백리나 구불구불 뻗어와 구름사이에 솟았네. 분명하게 동남쪽의 경계를 모두 갈라놓으니 천지자연이 만든 비밀을 귀신이 깨트렸구나'. 우리 모두가 귀신이 된 기분이다. 초암사에서 의상대사의 큰 뜻을 새겨보고 300여 미터 떨어져있는 죽계구곡 1곡(金當盤石으로 명명되어 있다)까지 갔다. 9곡 중 가장 핵심인 곳으로 화강암 너럭바위가 일품이다. 그 위로 흐르는 맑은 물길은 마치 거울같이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것 같다.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부석사를 구상했듯이 금당반석 맑은 물에서 우리 모두 자신의 귀한 삶에서 늘 새로운 구상을 하면 좋겠다.
펜션으로 돌아와 여주인장이 정성을 다하여 삶은 백숙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가까운 카페에서 마무리 대화를 나눈다. 이번 정모의 감흥과 다음 계획에관한 내용이다. 가을 정모는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카풀 운행한 친구들이 고맙다. 먼 길 가는 남쪽 친구들의 안전복귀를 기원한다.
굿바이 2024 봄 소백산 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