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허균의 패기와 당당한 기개

도보사랑 2024. 5. 17. 13:04

허균의 패기와 당당한 기개

남쪽으로 두 개의 창문이 있는 손바닥만한 방 안
한낮의 햇볕 내려 쪼이니 밝고도 따뜻하다
집에 벽은 있으나 책만 가득하고
낡은 배잠방이 하나 걸친 이 몸
예전 술 심부름하던 선비와 짝이 되었네
차 반 사발 마시고 향 한 가치 피워 두고
벼슬 버리고 묻혀 살며 천지 고금을 마음대로 넘나든다
사람들은 누추한 방에서 어떻게 사나 하지만
내 둘러보니 신선 사는 곳이 바로 여기로다
마음과 몸 편안한데 누가 더럽다 하는가
참으로 더러운 것은 몸과 명예가 썩어 버린 것
옛 현인도 지게문을 쑥대로 엮어 살았고
옛 시인도 떼담집에서 살았다네
군자가 사는 곳을 어찌 누추하다 하는가.

허균은 손바닥만한 방이 됐건 됫박만한 방이 됐건 또는 게딱지 같은 집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주어진 비좁은 공간에서 사람의 도리를 배우고 익히면서 삶을 조촐히 누릴 줄 알았다.

허균은 광해군 10년, 역모를 꾸몄다하여 처형된다. 그의 나이 50세 때다. 허균은 두 차례나 북경에 사신으로 따라가 가재를 털어 4천 권이나 되는 많은 책을 구해온다. 그의 탐구정신과 방대한 독서량! '한정록'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 다음 언젠가 숲 아래에서 속세와 인연을 끊고 세상을 버린 선비를 만나게 될 때, 이 책을 꺼내어 서로 즐겨 읽는다면 내 타고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 법정스님의 오두막 편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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