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새우

도보사랑 2024. 5. 18. 23:17

새우

'프레스트 오늘, 숲'에서 점심으로 새우탕 쌀국수를 먹었다. 짙은 고수 향이 나는 그릇에서 요리된 새우를 꺼내 접시에 담으니 다른 부위보다 새까만 새우 눈이 먼저 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새우 눈을 그리고 싶어 한 컷을 찍었다.  

혜원 신윤복 그림이 아닌 생물 그림 연습. 나도 모르게 수채화처럼 자꾸 덧칠을 한다. 간결한 선 위주의 풍속도와 달리 색칠이 더해져야 생물의 느낌이 살아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미술을 전공한 친구는 말했다. "미술과에 들어가면 맨 먼저 하는 게 데생과 세계 명화 모사(模寫). 그러다 어느 정도 감각이 다듬어지면 실제 실물을 보고 그린다"고. 찍어온 사진 속 생물을 그려보는 것인데 생각보다는 쉽지 않다. 색감을 더 주고자 붓펜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아직 감각이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의미 일 것이다.

취미로 그려보는 것이니 쉽고, 어렵다는 생각을 하는 그 자체가 넌센스. 가벼운 마음으로 집중, 몰입해보는 이런 시간이 좋은 것이다. 늦었지만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는 사실을 고맙게 생각하며 일기 쓰듯이 매일 A4지 한 장에 가벼운 텃치를 해보자. 이것 또한 새해 삼길포 해돋이에서 '올핸 접속보다 접촉을 하자'고 결심한 행위의 한 부분이니..

오늘은 상현달. 서늘한 밤공기를 느끼며 배다리 방죽 2바퀴를 돌고 아파트 공간을 더 걷고 나니 14,000보. 책상 위 스텐드 조명아래 새우 눈이 더욱 새까맣게 보인다. 그림 연습을 하도록 자극한 새우의 눈이었기에 한번 더 시선이 가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도 첫인상을 결정하는 포인트가 있다. 그 포인트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하기도 한다. 대화를 통해 첫인상의 느낌이 변화되기도 하지만 선입견은 여전히 무서운 힘을 가진다. 특히 요리된 새우의 까만 눈처럼 사람의 눈도 신체의 다른 어떤 부위보다 강렬한 느낌을 준다. 부드러운 눈매, 선한 눈매, 호감 주는 눈매를 가져야하는 이유다. 나이가 들면 심성이 만든 모든 것이 눈으로 표출된다고 한다. 고향의 동생이 내가 그린 새우 눈을 보고 '무서워 보인다'고 평하였기에 별 생각을 다 해본다.

내일은 친구들과 소백산 자락을 걷고 영주 부석사 저녁 노을을 보러가는 여행 길. 베드로시안의 詩, '그런 길은 없다'를 읽고 잠자리에 들고자한다.

- 그런 길은 없다 -

아무리 어둡고 험난한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고갯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
어둡고 험난한 이 세월이
비슷한 여행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과 위로를 줄 수 있기를.

20240518,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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