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집 목판(三峰集 木板)
삼봉집 목판이 이곳 평택 진위면 은산리에 보관되어 있었네. 정도전(鄭道傳) 가묘를 쓴 장소인 줄 알고 갔더니 정도전과 그의 맏아들 정진(鄭津)의 사당이 있고, 과거 정족산 사고와 태백산 사고에 보관했던 완벽한 삼봉집이 간행될 때 사용한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목판 소개와 보관 경위를 기술한 아래 내용이다.
"삼봉집 목판(총 258판)은 정도전(1342~1398)의 시문과 글을 모은 삼봉집을 간행할 때 만들어진 목판이다. 삼봉집에는 조선왕조의 건국이념이기도한 정도전의 정치, 경제, 철학, 사상이 망라되어 있다. 처음 삼봉집이 간행된 것은 태조 6년(1397)으로 정도전의 아들 정진이 부친의 시문을 모아 2권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세조 11년(1465)에 경상도 안동부에서 6권 6책으로, 성종 18년(1487)에 강원도에서 정도전의 종손인 정문형(鄭文炯)에 의해 8권 8책으로 간행되었다. 이 목판은 정조 15년(1791), 왕명에 의해 대구지방에서 삼봉집이 간행될 때 만들어진 것이다. 대구 용연사에 보관되어 오다가 1912년 정도전의 18대손 정종인(鄭鍾寅)이 봉화 정씨 문헌공파의 세거지인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로 옮겨왔다."
문중 후손들이 지은 정도전 기념관도 있다. 삼봉의 정신,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 정도전에 대해선 사학자에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그가 혁명에 목숨을 걸고 고려와 다른 성리학적 신권(臣權)에 기초를 둔 민본 국가를 건설하려고 했다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의 육체적 생명은 57년에 불과했으나 새 왕조의 창업에 기초를 놓고, 당대의 어떤 정치지도자들과 견주어도 지력이나 정치력 양면에서 그 탁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냉혹한 권력투쟁 과정에서도 신도 건설의 설계(문외한 내가 보아도 백악산을 주산으로 그 밑에 정궁인 경복궁을, 경복궁 좌우에 종묘와 사직을 배치하고, 동서남북 각각의 방에 성격과 특징이 분명한 지명을 붙인 도성을 설계한 그의 천재성이 놀랍다. 한양에 가서 산을 오르거나 둘레길을 걸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다)를 주도히고, 권력의 제도화를 통해 새로운 정치공동체적 왕조를 세우고자한 뛰어난 정치가...
600년 이상의 시공을 뛰어 넘어 작금의 정치가들이 삼봉 선생을 만나면 어떤 배움을 얻을 수 있을까? 백성보다 개인과 당을 우선하는 졸장부 정치에 부끄러움을 느끼지는 않을까. 난세를 풀어가는 지혜를 가져보면 좋겠다.
목판을 사진으로 담고 그의 글 중 서간문 하나를 필사해왔다. 나주 유배 중이었던 삼봉에게 "집엔 한 섬의 곡식도 없어 아이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허덕인다"는 부인의 서신에 대한 삼봉의 답장이다. "친구가 많았으나 내가 어려움을 당한 것을 보고 다 흩어지니 이는 본래 세력으로 맺어졌을 뿐 은혜로써 맺어지지 않았음이요, 부부의 관계로 한번 맺어지면 종신토록 변함이 없는 것이니, 나를 책망하는 것은 사랑해서이지 결코 미워서가 아닐 것이요. 그대는 집을 근심하고, 나는 나라를 걱정하는 것 외에 어찌 다른 뜻이 있겠소? 각각 직분만 다를 뿐이고, 성패와 이둔(利鈍)과 영욕 및 득실에 있어서는 하늘이 정한 것이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혁명가로서의 고뇌와 포부가 느껴지는 서간문이다.
삼봉 정도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오늘의 우연한 은산리 방문. 문화해설사와 삼봉에 대해 좋은 대화도 나누었다.
20240602,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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