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호랑이 그림 이야기

도보사랑 2024. 8. 4. 21:39

호랑이 그림 이야기

심규섭의 글, ‘아름다운 우리 그림’엔 호랑이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에는 대략 5,000여 마리의 호랑이가 살았다고 추정한다. 우리나라에 서식했던 호랑이는 두 종류이다. ‘참호랑이’라고 부르는 줄무늬 호랑이와, ‘개호랑이’로 부른 점박이 호랑이, 이른바 표범이다. 이 중에서 표범이 줄무늬 호랑이보다 개체 수가 대략 3~4배 정도 많았다. 이렇게 많은 호랑이가 서식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산이 많으며 골짜기가 깊고 먹이가 풍부했기 때문이다. 조선 땅은 호랑이에게 천국 같은 곳이었다. 백성들은 농경지를 확보하기 위해 호랑이와 싸웠다. 둘 다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호랑이와의 일대 전쟁을 벌였다. 병조에서 아뢰기를, '착호갑사는 당번, 하번을 모두 20인으로 정하였으나, 유독 전함 착호갑사만 아직도 정액이 없으니, 바라건대 20인으로 정하게 하소서.' 하니, 상왕이 그대로 따랐다. 세종대왕은 호랑이만 전문적으로 잡는 '착호갑사(捉虎甲士)'라는 특수부대를 만들었다. 매년 각 고을에 3마리의 호랑이 가죽을 중앙에 납품하라는 어명이 떨어졌다. 대략 300여 개의 고을에서 매년 1,000여 마리의 호랑이 가죽이 한양으로 보내졌다. 매년 1,000여 마리의 호랑이를 잡아 죽인 것이다. 이 행정명령은 영조 때에 폐지된다.

동물을 소재로한 그림과 관련하여 화가들은 대부분 참새, 학, 사슴, 거북, 매 정도를 그렸으나 화가 정홍래는 호랑이의 매력을 단번에 알아봤다. “사람을 압도하는 엄청난 덩치, 범접하지 못하는 눈빛, 세상의 모든 것을 찢어버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아름다운 무늬의 털.. 아,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런 호랑이를 그릴 수만 있다면..” 호랑이가 포효하는 모습은 정홍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여보게 친구, 밤새 호랑이 꿈을 꾸었네. 산길을 걷는데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호랑이가 내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지 않겠나. 오금이 저려 털썩 주저앉았는데 나를 한참이나 노려보더라고. 내가 정신을 차려 붓과 종이를 꺼내 그리고자 하니 몸을 돌려 후다닥 숲속으로 사라졌네.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나를 쳐다보던 호랑이의 눈길을 잊을 수가 없네.” “자네, 제정신인가. 꿈속에서 호랑이를 그리려 하다니. 얼마 전에도 호랑이가 궁궐 담장을 넘어 들어오는 바람에 초비상이 걸리고, 많은 경호무사가 징계를 받은 사실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여기까지가 심규섭의 '아름다운 우리 그림'에 나오는 호랑이 그림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화가 정홍래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영어 공부를 시작할 때 꿈속에서 영어로 대화하면 얼마 지나지않아 대화 가능한 영어 능력을 갖춘다는 말이 있는데 호랑이 그림의 매력을 단번에 알아보고 꿈속에서도 호랑이를 그리려한 정홍래는 당대 최고의 호랑이 화가로 인정 받았을 것이다. 정홍래보다 25년 이후 태어나 당대 최고의 천재 화가로 인정받은 단원 김홍도가 호랑이를 처음으로 그리고자 했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정홍래의 호랑이 그림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홍래의 대표작, '산군포효도''와 단원의 '송하맹호도'를 찾아보았다. 산군포효도의 호랑이는 부리부리한 눈, 날카로운 이빨, 세운 발톱의 모습이다. 단원의 호랑이는 힘이 넘치되 똑같은 호랑이 눈임에도 왠지 사납게 보이지 않고 친근감을 준다.

연필로 두 화가의 그림을 스케치 해본다. 단원의 그림은 두 점(송하맹호도, 호랑이)을 연습해본다. 단원의 호랑이가 왠지 큰 고양이 같은 친근감을 주는 이유는 이빨을 드러내지 않아서 그러한 느낌을 주는 점도 있지만 스케치 도중에 발견한 사실 한 가지. 몸통의 줄무늬가 정홍래의 호랑이와 다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정홍래의 호랑이 줄무늬는 두 가닥이 흐르다가 끝에 가선 날카로운 선 하나로 합쳐진다. 반면, 단원의 호랑이 줄무늬는 하나로 합쳐지지 않고 각자 뭉퉁하게 흐른다. 단원보다 25년 앞서 태어난 정홍래의 호랑이 그림을 단원이 베껴 그렸을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줄무늬 하나만 보더라도 베껴 그렸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맹호의 모습에 친근한 느낌이 드는 것은 단원 그림에 내재된 특성 때문일 것이다. 모든 대상을 사실그대로 묘사한 단원의 그림엔 과장이나 거짓이 없기에 사나운 호랑이 그림에도 소박한 인간미가 드러나는 이유다. 그의 호랑이 그림 두 점을 스케치 해보면서 느껴본 소감이다.

20240804,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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