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소림야수도(疏林野水圖)

도보사랑 2024. 8. 9. 21:40

소림야수도(疏林野水圖)

3주 전에 동해바닷가 '금호설악'에서 1박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시원한 동해와 장엄한 산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유일한 도시는 속초다. 산행을 하지 않고 눈으로 산을 즐기려면 설악 울산바위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숙소를 정하면 된다.

YS가 대통령 때 교육부장관을 역임하신 안병영교수는 집 서재에서 24시간 울산바위를 볼 수 있는 영랑호 가까운 곳에 인생 2막의 터전을 마련하여 그곳에서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을 글로 남기곤 했다. 글엔 서재 창문을 열면 울산바위를 바라볼 수 있어 사색할 수 있고, 부인과 자주 산책하는 영랑호에 대해선 지구상 최고의 비경을 가진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자주 하셨다. 경치로 따지면 어찌 영랑호가 영화 '아바타'의 촬영지, 금방이라도 요정이 튀어 나올 듯한 환상적인 자연경관을 가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보다 더 나을 수 있겠는가? 교수님이 그렇게 평가한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알려면 플리트비체를 먼저 가보고 난 뒤 영랑호로 가서 범바위에 올라 멀리 설악의 울산바위를 보고, 제법 긴 영랑호 전체를 직접 발로 걸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며, 어디에 그 순수 美가 숨어있는지 발견해보면 좋겠다. 이틀 전 단원 김홍도의 수묵화, '영랑호'를 스케치 해본 이유도 거기에 있다.

속초 시내에서 미시령 방향으로 차를 타고 가면서 울산바위를 바라보면 설악의 주봉인 대청봉 등 30여 개의 설악 봉우리들을 힘들게 오르지 않아도 설악의 힘찬 기운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십여 개의 암벽이 초록 카페트를 뚫고 힘차게 솟아올라 천하를 호령하면서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뭇 산허리들을 찬찬히 전개시키는 울산바위의 장엄한 모습은 강한 힘과 부드러운 지혜를 가진 장수를 연상케한다. 화랑 영랑이 동해에 산재한 수십 개의 호수 중 으뜸인 영랑호에 취한 이유도 울산바위가 옆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 들어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유람의 삶은 건강을 지켜주는 비결이다. 근육과 심폐기능을 강화시키는 운동보다 아름다운 산수를 찾아 머리를 맑게하고, 마음을 비울 수 있으면 유연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금강산, 설악산 등 산수화 작품을  많이 남긴 김홍도도 병이 찾아오기 전까진 유람을 자주 다닌 것 같다. 노년에 병이 찾아와 외롭고 쓸쓸한 심경을 보여주는 듯한 그의 작품 '소림야수도(疏林野水圖)'를 스케치해본다. 화폭엔 '野水參差發漲痕 訴林歌(短)出霜根'이란 시구가 씌어져있다. 이는 아래의 소동파 詩 한 귀절을 인용한 것이라 한다.

"들녘 물 들쑥날쑥 불었던 자취를 드러내고
성근 가지 삐쭉삐쭉 서리에 뿌리를 드러냈네
조각배 노 저어서 어드메로 돌아가나
우리 집은 강남의 황엽촌에 있다오"

연필로 가볍게 그려보는 그림엔 소동파의 詩대로 성근 가지가 멋대로 뻗은 나무 3그루가 있고, 정자 너머 물을 건너서까지 황량한 가을 풍경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두 사람이 빈 들녘을 바라보고 있다. 내(川)에 걸려있는 다리는 황혼에 다다른 운명의 다리 같은 느낌을 준다. 친구와 함께 빈 가을 들녘에 선 단원의 쓸쓸한 노년의 삶을 보는 듯 하다.

그의 삶에도 모든 인간의 삶처럼 성공과 좌절, 영광과 비애, 기쁨과 슬픔이 있었을 것이다.
단원이 말년에 병상에서 힘들어했다는 기록을 보니 스티브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전 했던 말이 생각난다.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점철된 추억'이다"라고 했던 말.

'소림야수도(疏林野水圖)'를 스케치하면서 다가온 빈 가슴을 다시 채우고자 '목동섭우도(牧童涉牛圖)'를 그려 채색해본다. 소를 타고 홍수가 난 듯한 개울물을 건너는 시골 아이, 물에 몸통의 반이 잠긴 소의 등에 올라 탄 아이는 위태로움을 느끼기는 커녕 태평한 모습이다. 황소는 착한 얼굴로 무덤덤히 제 갈 길만 가고 있고, 놀란 물새들은 다급하게 날고 있다. 두 마리 오리도 물이 불어 생긴 나무 사이 공간을 아늑한 보금자리로 여기는지 놀고있는 모습이다.

홍수가 나도 태평스런 목동처럼 살다 사랑으로 점철된 추억을 남기는 삶이면 좋겠다.

20240809,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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