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양반들
단원 김홍도의 눈. 평민과 동물, 자연을 향한 그의 눈은 따뜻하나 조선의 지배계급인 양반을 향할 때는 사뭇 다르다. 그러한 느낌을 받는 그의 그림을 연습해본다.
혜원 신윤복의 그림 '단오풍정'엔 단오날 냇가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을 훔쳐보는 두 어린 소년이 나온다. 외설스럽기보단 다소 익살스런 모습이다. 그러나 단원의 그림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을 훔쳐보는 사내(젊은 양반이다)의 모습에선 다른 느낌을 받는다. 빨래터에서 두 여인은 빨래방망이를 열심히 두드리고, 한 여인은 물에 발을 담그고 빨래를 세탁하며, 바위 위에서는 빨래를 끝낸 여인이 머리를 땋고 있는데 큰바위 뒤에서 한 사내가 이 모습을 훔쳐보고 있다. 빨래하는 모습이 궁금해서인가? 숨어서 부채로 얼굴을 가린 것을 보니 음흉한 속셈이 있어 보인다. 그가 보고 싶은 것은 빨래하는 모습이 아니라 여인들의 하얀 속살일 것이다.
단원의 그림에서 양반들의 여인 훔쳐보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빨래터외 우물가, 길가에서도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틈만 나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훔쳐보기에 열중이다. 지난 7. 19일 그려본 '노상파안'이란 작품에서도 말을 타고 가는 젊은 양반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면서 어린 아이를 안고 소를 타고가는 여인을 훔쳐보고 있었다. 심지어 여인의 남편이 뒤따르고 있음에도. '나그네의 곁눈질'이란 작품엔 길 가던 선비가 밭에서 일하는 여인들을 훔쳐보느라 정신이 없다. 결혼을 했던, 아이가 있든 말든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조선의 부채가 이런 용도로 쓰라고 만든 물건인지는 모르겠다.
김홍도의 '훔쳐보기' 그림에서 조선 후기 양반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발견한다. 개국 초기 신선하고 진취적이었던 신진 사대부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일그러진 양반들의 초상과 함께 쇠락해간 조선 후기의 모습을 엿본다.
단원은 그러한 시대를 살았다. 정조가 살아있을 땐 패기만만한 기상으로 화폭을 대했지만 그의 일생 대부분은 쇠락해간 조선과 함께 했다. 그림을 통해 그가 살아내고자 했던 그 시대를 상상해보면 그의 작품 한점 한점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20240818,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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