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단순성(simplicity)

도보사랑 2024. 8. 23. 11:35

단순성(simplicity)

단원 김홍도의 수많은 그림 중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화첩에 있는 그림들이 있다. 그 중에 4점을 그려보았다.

웃통을 벗고 부채를 든 남자가 잡은 물고기를 응시하는 장면을 포착한 '계색도', 수차를 힘차게 밟으며 밝은 표정으로 생업에 열중하고 있는 인물을 그린 '수차도', 영조의 강무 행사에 따라 나서 그린 '수렵도',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린 것 같은 '낙타를 탄 몽골인'이다.

모두 심플하면서 가벼운 그림들이다. 단원 그림의 특징, 성격과 조금 동떨어진 느낌을 받는다. 그림속에 詩를 넣어 그림의 성격과 그린 배경을 알게하고, 천지만물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묘사하고, 등장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들을 통해 세상의 모습을 그려낸 단원 특유의 그림들과는 색다른 느낌을 준다. 그림을 그린 시기를 확인 할 수는 없지만 아마 초기의 작품들인 것 같다. 4점 모두 붓칠도 화려하지 않고 만화같은 느낌을 준다. 심플한 것이 오히려 심오한 세계를 상상하도록 만든다. 사실성을 바탕으로 과장이나 품격을 배격한 단원의 다양한 그림 중에서 진정한 가치를 가진 작품은 드러나지 않은 화첩에 내장되어 있는 이런 가벼운 그림들이 아닐까?

천재화가 이중섭이 담배 은박지에 못으로 그렸다는 그림이 생각난다.
시인 구상은 이중섭의 피난시절을 추억하며 다음과 같이 시를 읊듯이 말했다. "중섭은 판잣집 골방에 시루의 콩나물처럼 살면서도 그렸고, 부두 노동을 하다 쉬는 참에도 그렸고, 다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대폿집 목로판에서도 그렸다.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면 합판이나 맨종이, 담배종이에도 그렸고, 물감과 붓이 없으면 못이나 연필로도 그렸다.
잘 곳과 먹을 곳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그렸고 슬퍼도 그렸고, 부산, 제주, 통영, 진주, 대구, 서울 등을 전전하면서도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 이 점에선 한시도 가만히 못있고 다양한 장르의 수많은 그림을 그린 단원 못지않은 중섭이다. 화구 살 돈이 없는 곤궁한 처지,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했던 상황 등 어떠한 세계에서도 그림을 사랑한 중섭의 작가 정신이 돋보인다. 단순하고 순백한 그 그림 사랑!

단원의 그리기 욕구가 한창 피어날 때 그린 것 같은, 쉽게 모사(模寫)할 수 있는 이 그림들을 다시 찬찬히 바라본다. 누구나 따라 그릴 수 있고, 큰 댓가를 치르지 않고, 얽매임 없이 평범한 것을 중시한 것 같은 그 단순성(simplicity)이 참 좋아보인다. 실체와 본성, 심오한 진리는 단순함과 여백에 있지않을까? 특히 단순히 잡은 물고기를 바라보는 사내를 그린 그림에 계색도(戒色圖 : 색을 경계한다, 과도한 채색을 삼가한다?)란 이름을 붙인 것이 그러하다.

*이중섭의 은박지 그림은 인터넷에서 가져옴

20240823, Song s y


이중섭의 은박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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