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죽서루

도보사랑 2024. 9. 3. 08:28

죽서루

2년 전 8월 13일 삼척 죽서루에 갔었다. 올 여름이 다 가기 전 다시 삼척으로 가서 죽서루와 창해 정란 선생의 한평생 산행도반이었던 노새 청풍(靑風)이 이별여행 중 기력이 다해 숨을 거둔 곳, 청려동(靑驢洞)을 찾아 볼 생각이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지난 글을 찾아 읽어보고, 단원 김홍도가 정조의 명을 받아 금강산과 영동 지역 등 총 75곳을 직접 유람하며 그린 산수화 화첩 '금강사군첩'에 수록된 죽서루를 그려보는 것으로 그 아쉬운 마음을 대신해본다.

먼저 삼척 청려동에 대해선 '창해 정란'을 쓴 작가는 조선 최고의 산행가 정란 선생이 남긴 그의 산행기록 불후첩(不朽帖 )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의 나이 62세, 30년동안 발걸음을 함께 한 청풍과의 이별 여행을 떠난다. 청풍이 유난히 좋아한 동해 바닷가로 가기 전 청풍이 좋아하는 콩을 물에 불리고, 발굽도 깎아주고, 구리방울도 닦아 광내고, 갈기도 정갈히 손질해 주었다. 마릉 집을 나서서 천천히 가면서 말한다. '청풍아, 이번 길은 너와 내가 수 없이 다녔던 길이다. 너의 반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 이번 여정은 널 위한 여행이다. 네가 신기한 듯 바라보았던 강릉 단오절 난장을 구경하고, 네가 뛰어놀던 경포 바닷가에서 불린 콩으로 소풍이나 즐겨 보자꾸나'. 청풍은 강릉 단오제를 즐기고 바닷길로 걸어 내려오다 삼척에 이르자 기력이 떨어지고 숨소리가 거칠어지더니 더이상 걷지못하고 양지바른 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를 본 삼척 사람들의 전언이다. "정란은 자식 잃은 슬픔 이상으로 통곡했고, 사람이 죽었을 때와 똑같이 제를 지내고 상(喪)을 치러주며 제문을 읽었다. '청풍아! 처음으로 나를 대할 때 내 모습이 신기한 듯 이리저리 살피던 눈빛이 여전한데 이제 너를 떠나보내는 마음 애달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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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선 천지 어디든 함께했는데 이제 누구와 길동무한단 말이냐? 두렵기도 하다. 마지막 가는 너의 눈빛에 조선 팔도 산하가 서려 있음을 기억하마. 내 산행의 도반, 청풍아! 고맙다.' 제문을 읽는 소리가 애절했던지, 이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미물을 대하는 예(禮)에 감복한 유림들은 이 고을 이름을 靑驢洞(청노새 동네)이라 부르며 본보기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2년 전 죽서루에 갔다가 남긴 짧은 글이다. "동계(東界)에는 경치가 뛰어난 곳들이 많은데 누각중엔 죽서루를 으뜸이라 했다. 관동8경 중 죽서루를 제외한 7경은 전부 동해 바다와 닿아있다. 죽서루는 삼척 시내외곽 오십천을 끼고 푸른 층암 절벽위에 솟아있다. 누각을 받치는 기둥 절반은 암반위에 올려져있다. 맑고 깊은 오십천의 물이 여울을 이루어 절벽 아래를 감돌아 흐르니 서쪽으로 지는 햇빛에 푸른 물결이 돌아 부딪혀 반짝반짝 빛난다. 고려, 조선시대 수많은 문재(文才)들이 이곳에 와서 詩를 읊고 글을 남겼다. 이승휴, 율곡, 송강의 글도 보인다. 이중 관동8경 중 죽서루가 제 1경이라며 송강 정철이 쓴 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늦여름 매미소리가 요란한 죽서루, 詩를 쓰는 묵객의 심정은 아니지만 옛것을 돌아보며 내 마음은 잠시 고요, 청정해진다".

지난 7월 4일 속초와 강릉에 갔음에도 삼척을 들러지 못했다. 8월이 오면 죽서루를 찾고 싶다는 나에게 죽서루 누각 초석에 관한 글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신 분이 계신다. 2년 전 내가 자세히 보지못했던 죽서루의 숨은 보물을 보내주신 그 정성과 관심이 참으로 고마웠다.  

지난 글들을 읽고 단원의 그림 '죽서루'를 연필로 그려본다. 단원이 그린 그림은 오십천 건너 서쪽 먼 곳에서 죽서루를 바라본 모습이다. 오십천은 배를 띄울 정도로 깊고 넓어 보인다. 본 누각외 여러 작은 누각들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죽서루는 지금보다 크고 향리(鄕里) 뿐만 아니라 조정 차원에서도 특별 관리를 했던 것 같다. 당대의 문인들은 누각에서, 오십천 배위에서도 풍월을 읊었을 것이다. 오십천과 절벽, 그 주위 산들까지 포함된 '죽서루' 작품은 넓고 깊은 심미안을 가진 큰 인물 단원이었음을 말해준다.

가을이 오는 소리가 평생 산행도반의 죽음을 슬퍼한 정란선생을 생각나게 하고, 되돌아 오지 못하는 여름의 풍경을 다시 부르며 실천하지 못한 미완의 걸음을 더욱 아쉽게 만든다. 생각났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카르페디엠!

20240831,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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