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파대(凌波臺)
비교적 모사하기 쉬운 단원 김홍도의 그림 두 점(월하취생, 영지선녀도)을 그려보았다. '월하취생'은 쏟아지는 달빛 방안에서 붓과 술동이를 옆에 두고 생황을 불고있는 젊은 선비를 그린 그림이다. 달빛이 방안 가득히 번지는 가운데 방바닥에 깔린 담배잎(?) 위에 앉은 선비가 부는, 맑은 음색과 공명 가득한 생황 소리가 정적을 깨는 것 같다. 영지를 허리에 매달고 곡괭이에 꽃바구니를 매단 꽃의 여신을 그린 '영지선녀도'는 도교 색채가 짙은 그림이다. 여신은 여장을 한 남자 신선이라는 설도 있다. 옅은 채색의 이 두 그림은 서민적 냄새가 짙은 단원의 풍속화와 다른 느낌을 준다. 다양한 세계를 넘나든 단원의 그림!
단원이 정조의 명을 받아 금강산과 영동 지역 등 총 75곳을 직접 유람하며 그린 산수화 화첩이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이다. 문득 이 75 곳의 비경을 찾았던 단원의 걸음을 쫒아가 그의 사실적인 눈과 세밀한 감정을 상상해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천재 화가가 직접 발로 찾아가 그림을 남긴 곳엔 놀라운 비밀과 보물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단원이 대부분 수묵과 옅은 채색으로 그린 '금강사군첩' 75 비경을 시간 나는대로 연필과 색연필로 모사해 보고 싶다. 단원의 마음을 읽을 수 없어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산수는 그냥 지나치면 되고.. 가급적 단원이 걸었던 길 순서대로 따라 가면 단원의 숨결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이나 동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때 그때 그리고 싶은 그림을 선택해도 좋을 것이다.
기록에 근거하여 단원의 걸음을 쫒아가본다. 1788년 무신년(戊申年), 정조의 명을 받은 단원은 한양을 떠나 원주를 거쳐 강원도 땅에 들어선다. 영월, 평창을 지나 강릉에 다다른 단원은 첫 그림으로 경포대를 그렸다. 난 지난 8월 1일 이 경포대를 연필로 그려보았는데 그땐 이 그림이 단원의 사생여행(寫生旅行) 첫 그림인 줄 몰랐다.
단원은 경포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고 발걸음을 강릉 아래 고을로 돌린다. '금강사군첩'에 수록된 양양의 낙산사나 설악산 울산바위, 속초의 영랑호와 고성 청간정 같은 절경과 명소가 강릉 위쪽으로도 수두룩한데 단원은 왜 강릉 남쪽으로 먼저 발을 옮겼을까? 최종 목적지가 금강산인 것을 감안하면 단원이 굳이 남하한 이유는 스케치북(금강사군첩의 밑그림으로 추정되는 '해동명산도첩')에 남겨야 할 절경들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한편으론, 단원이 관동8경의 제1경으로 꼽혔던 삼척 '죽서루'를 먼저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감히 상상해본다. 단원은 해안선을 따라 걷다가 동해 추암 바닷가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가진 바위에 감탄하며 걸음을 멈춘다. 바다 위에 도드라진 '촛대바위'의 모습과 그 주변을 호위하 듯 떠 있는 작은 바위섬들의 어우러짐 앞에서 보따리를 뒤져 지필묵을 꺼내 그림을 그린다.
그림 이름은 '능파대(凌波臺)'다. 지금 동해시(삼척쪽이 더 가깝다)에 위치하고 있다. 보통 '촛대바위'로 통칭되는 이곳을 선조들은 '능파대'라고 불렀다. 세조 때 강원도 제찰사로 있던 한명회가 이곳을 찾은 후 하늘로 솟아오른 바위들에 감탄해 '물결 위를 가볍게 걸어 다니는 미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라는 뜻의 '능파(凌波)'로 부른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후대 사람들은 이곳의 지명을 따라 '추암(湫岩) 촛대 바위'라고 불렀다.
하얀 포말을 뿜어내는 바다를 정원 삼아 크고 작은 기암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절경의 모습이다. 오죽했음 단원이 예상하지 못한 이곳에서 자리를 펴고 봇짐에서 화구들을 꺼내 들었을까? 절벽의 끝 자락에 앉아 먼 바다와 기암들을 응시하는 두 선비 중 단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단원은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며 그림을 그렸을 것 같다. 강릉 경포대에 이어 두번 째 그림이니 꽤 신경을 썼을 것이다. 단원의 마음을 놓치지않고 따라가 세밀히 그려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동해시를 가게되면 제일 먼저 이 능파대를 찾을 것 같다.
20240904, Song s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