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단원의 행로를 따라간 그림

도보사랑 2024. 9. 6. 01:01

단원의 행로를 따라간 그림

금강산과 영동지역 비경을 그린 화첩, '금강사군첩'이 탄생한 단원 김홍도의 걸음 행로가 궁금하여 '금강사군첩' 권1~권5에 수록된 산수화를 수록 순서대로 추적해본다. 권1 첫그림은 평창 '청심대(淸心臺)'다. 그림을 행로 순서대로 수록한 것이 맞다면 단원이 그린 첫 그림은 '경포대'가 아닌 '청심대'다. 동해시 '능파대(추암 촛대바위)'도 두번 째 그림이 아니고 화첩엔 10번 째로 수록되어 있다. 지난 나의 글이 틀렸다.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지 못한 나의 상상의 결과. 그런데 화첩 전반(특히 권2)에 수록된 그림 순서들이 합리적이지 않다. 행로 순서대로 수록하지 않은 것 같다. 수록된 순서대로라면 강원도 고성(청간정)에서 남쪽 울진(망양정)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고성으로 올라갔고, 그곳에서 다시 울진으로 내려가 성류굴과 월송정을 그리고 양양, 속초로 올라온 셈이 된다. 실제 그렇게 걸었을까? 수록 순서대로 하나하나 지명을 중심으로 따져보니 대체적으로 단원이 걸었던 길은 한양에서 출발하여~영동 9군(그림들은 평창, 오대산, 대관령, 강릉, 동해, 삼척, 울진, 양양, 속초 등에 위치하고 있다)~내금강~외금강~회양을 거쳐 한양으로 복귀한 행로로 생각된다.
이를 지명과 그림으로 재구성한 어느 화가의 아래 기록이다.

"한양을 떠난 단원은 양평, 원주를 거쳐 평창에 도착, 대화에서 진부로 가는 중간에 위치한 '청심대'를 그리고 오대산으로 들어간다. 월정사, 사고(史庫), 상원사를 그리고 대관령을 넘는다. 강릉에서는 구산서원, 경포대, 호해정을 그린 후 남쪽 삼척으로 간다. 삼척에서는 죽서루, 능파대, 두타산 무릉계를 그리고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 울진 성류굴, 망양정, 평해 월송정을 그린다. 평해가 남쪽 끝이다. 다시 북상하여 강릉을 지나 양양으로 간다. 낙산사, 관음굴을 그리고 설악산으로 들어가 토왕폭, 계조굴(울산바위), 와선대, 비선대 등을 그린다. 속초를 지나 간성(고성군 토성면)에서 청간정을 그린다. 더 북상하여 고성에서 대호정, 해산정, 해금강, 삼일포를 그리고 이어 더 북상하여 통천 초입에 있는 옹천과 문암, 총석정, 환선정을 그린 후 안변에 이르러 시중대와 가학정을 그린다. 안변이 가장 북쪽 끝이다. 남하하여 철령을 넘어 회양에서 취병암과 맥판을 그린다. 이제 본격적인 금강산을 그리기 위해 내금강으로 들어가 명경대 골짜기에서 명경대, 문탑, 증명탑, 영원암을 그린 다음 원통암 골짜기로 가서 원통암, 수미탑을 그리고 만폭동 골짜기(흑룡담망보덕암, 분설담, 진주담, 마하연, 묘길상 등)를 그려나간다. 내금강을 다 그린 후 동해안쪽 외금강으로 간다. 유점사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바라본 은선대 12폭포를 그린 후 효운동, 선담을 그린다. 다시 고성쪽으로 나와 치폭을 그린 다음 신계사 계곡으로 들어가 비봉폭, 구룡연을 그린 후 온정에선 만물초를 그린다. 온정령을 넘어 회양으로 가기 전 맥판을 그린다. 한양으로의 귀로 금성에서 마지막으로 피금정을 그리고 금화, 영평을 거쳐 한양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재구성 행로에도 '금강사군첩'에 수록된 그림 중에서 빠져있는 일부 그림들(장안사, 표훈사, 삼불암, 백화암부도 등)이 있다. 단원이 걸었던 정확한 행로를 추적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난 '금강사군첩' 각 권에 순서대로 기록된 그림은 걸음 순서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재구성한 행로 기록에 더 신뢰가 간다. 그리고 발로 밟았던 75곳 중 내려오는 그림은 60점으로 총 75점 중 15점이 유실되었는지, 아니면 60점만 그렸는지 알수 없지만 난 단원이 빠짐없이 75점 모두를 그렸을 것이라 생각한다.

첫 그림 '청심대'와 여섯 번째 그림 '대관령'을 그려본다. 그 중간 행로상 오대산 비경들(월정사, 사고, 상원사)은 다음에 그리기로..
굳이 단원의 행로를 순서대로 따라가며 그림을 모사해 보는 것은 그림 자체가 주는 느낌보다 화구를 담은 봇짐을 말에 싣고 비경을 찾아가는 길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 마주친 백성들 삶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온 단원의 정신 세계를 상상해보기 위함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절경으로 유명한 '청심대'는 시냇가에 우뚝 솟아 있다. 수많은 묵객들이 이곳에서 글과 그림을 남겼는데 고종 때 강릉부사였던 박양수와 기생 청심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유명한 곳이다. 박 부사는 기생 청심과 청심대에서 헤어지며 한양으로 꼭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소식은 없었고, 절망했던 청심은 이곳 절벽에서 뛰어내려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단원이 이 청심대를 그린 후의 이야기다. 오대산에서 머물며 월정사, 상원사, 사고(史庫)를 그린 단원이 강릉으로 가는 고갯마루에서 멀리 경포대와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그린 '대관령', 단원은 이 험하고 긴 백두대간 고갯길에서 그림을 그리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20240905,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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