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가을

도보사랑 2024. 8. 30. 22:04

가을

옥순봉은 충북 제천시 수산면에 있는 기암 봉우리다. 희고 푸른 여러 개의 봉우리가 마치 대나무 싹과 같다고 하여 옥순봉이라고 이름 붙여졌는데 강선대와 이조대가 마주보고 있는
기암 괴봉이 거대한 병풍처럼 펼쳐지면서 충주호와 어우러져 뛰어난 경관을 연출한다. 단원 김홍도는 이 옥순봉을 그렸다. 아마 제천에서 가까운 연풍(지금의 괴산) 현감 시절에 이곳을 유람하면서 그린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월악엔 수많은 기암 절벽들이 있다. 그림을 보니 작년 7월에 월악 북바위산을 찾았을 때 송계계곡에서 보았던 망폭대(望瀑臺)가 생각났다. 옥순봉을 축소하여 옮겨놓은 것 같은 모습의 망폭대.

옥순봉을 연필로 그리다 이젠 이름난 월악의 봉우리들을 더이상 밟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든다. 중봉, 영봉, 마패봉, 신선봉 등 구름속 아득한 신선들의 세계를 볼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체력이 옛날 같지않아서, 무릅을 아끼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무리한 욕심을  가지지 말아야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단원이 말타고 천천히 유람하면서 그린 옥순봉이 나에게 그러한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자연의 순리에 쫒아 무욕의 삶을 살도록..

이어 그려본 '목동귀가도'도 마찬가지. 가을 들녘을 옆에 두고 소를 타고 다리를 건너는 목동의 한가한 모습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초지에 풀어놓은 말, 소들에게 충분한 먹이를 먹인 후 우리에 가두고 만족스런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목동에겐 눈꼽만큼의 욕심도 보이지 않는다. 주어진 소임에 충실한 모습에서 가을 들녘이 휑하게 보이지 않는다.

창문을 여니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거실 에어컨을 켜고 방문을 연 상태로 잠을 자지않아도 되는 계절이 왔다. 공원 산책길, 물의 마당 분수에서 뿜어 올리는 물줄기, 댄스 동호인들의  음악에 맞춘 활기찬 율동이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더욱 시원하게 만든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처럼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는 가을을 맞이하고 싶다.

20240830,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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