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풍경 3점
단원은 오대산 월정사에 머물면서 4점(중대, 월정사, 상원사, 史庫)을 화폭에 담았다. 이 중 '중대'를 제외한 3점을 모사해 보았다. 월정사를 창건한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석가모니 진산사리를 모신 곳으로, 한국불교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중대 (오대산중대적멸보궁)'는 제일 마지막에 그려보기로 한다. 그 이유는 단원의 그림세계에 자리잡고 있는 그의 종교적 신념을 '중대'를 그려보면서 느껴볼 수 있지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중대'는 금강사군첩에 담긴 모든 화폭들의 응축물, 단순한 적멸보궁의 모습이지만 단원이 그 어떤 그림보다도 깊은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그렸을 것이라 단언해본다.
단원은 오대산에서 나와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내려오면서 구산서원, 경포대, 호해정을 그렸다. '구산서원'은 16세기, 조선에서 서원이 활발하게 건립될 때 공자를 향사(享祀)하는 서원으로 1555년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대관령에서 내려와 남대천을 따라 강릉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꽤 큰 서원의 모습이다. 남대천도 모래보다 암석이 많이 깔린 모습이다. 율곡을 탄생시킨 고장답게 관동의 유생들이 학구열을 불태웠을 것 같다.
'경포대'는 지난 8월 1일에 스케치 해보았는데 그땐 경포호의 모습에만 관심을 두고 그렸다. 앞쪽 언덕에 보이는 작은 건물인 경포대에 관심이 덜 간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본다. 단원은 분명 예로부터 경포호를 배경으로한 관동 8경 중 하나인 이 누각에 더 집중했을텐데 난 누각보다 호수에 더 집중한 것은 그림의 본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금은 동해바다와 경포호 사이를 해안사구가 막고 작은 수로만 있는 모습인데 단원이 찾았던 때는 그림에서 처럼 시원하게 바다로 뚫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호해정'은 1750년 경포호 북쪽 언덕 위 깊숙한 산기슭에 소박하게 지어진 정자이다. 가보지 못했기에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없지만 경포호를 앞에 둔 모습으로 보아 산기슭이 아닌 높은 곳에 올라 그린 것 같다. 정자와 함께 호수엔 작은 배, 사구 넘어 끝없이 펼쳐지는 동해를 담아낸 시원한 그림이다.
단원은 강릉에서 이 3점의 그림을 그린 후 북쪽 금강산으로 가지 않고 남쪽 삼척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20240908, Song s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