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비경 3점
양양에서 낙산사와 관음굴을 그린 단원은 발길을 북으로 돌려 속초에 이르러 설악의 비경 3점을 그렸다. '금강사군첩'엔 토왕폭-와선대-계조굴 순서로 수록되어 있다.
토왕성폭포를 먼저 모사해본다. '토왕폭(土王瀑)'은 외설악에 위치하고 있는 약 320m 길이의 3단 폭포다. 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은 비룡폭포와 육담폭포를 지나 쌍천으로 흐른다. 평소에는 물줄기가 잘 보이지 않다가, 비가 올 때나 비가 온 직후에 뚜렷한 물줄기가 나타난다. 난 2019년 비룡폭포까지 오른 적이 있는데 그때 토왕성폭포 전망대까지 더 올라갔으면 이 폭포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단원이 토왕폭을 화폭에 담은 장소가 어디인지 궁금해진다. 그림엔 문주봉, 보현봉, 석가봉, 노적봉 등 토왕폭 주위 모든 봉우리가 선명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런 모습을 담기위해선 지금의 토왕폭전망대 부근까지 올라가야하는데 이 위치에선 산아래 좌우로 흐르는 쌍천은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왜 외설악 입구에 있는 쌍천을 포함하여 그렸을까? 단원은 고봉들과 폭포만을 화폭에 담기가 아쉬워 산에서 내려와 화폭 하단 여백에 물(水)까지 그려 넣은 것은 아닌지? 혹시 권금성에 올라가면 쌍천을 포함한 모든 풍경을 다 볼 수가 있어서 그 곳에서 그린 것인가? 화폭 속에 그려진 폭포 주위 크고 선명한 봉우리들을 보면 이것 또한 이치에 맞지 않다. 사실성에 충실했던 단원에게 '토왕폭을 어디서 바라보며 그렸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와선대(臥仙臺)'는 아주 오랜 옛날 마고선이라는 신선이 바둑과 거문고를 즐기며 너럭바위에 누워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였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난 고교 3학년 수학여행 때 신흥사를 구경하고 와선대 위쪽에 있는 비선대에 왔었다. 계곡을 따라 담(潭)과 소(沼)를 즐기며 계속 올라 넓은 바위 마당에서 친구들과 어깨동무 하며 찍었던 사진도 있었다. 단원의 '와선대' 화폭엔 큰 너럭바위 모습은 화폭 아래 아주 작은 모습으로만 그려져있다. 너럭바위 보단 울창한 숲과 기이한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설악의 봉우리들과 맑은 물 모습 위주로 그렸다. 설악의 최고 비경들이 숨어 있는 대청봉, 마등령, 공룡능선 등이 너무 멀고 험해서 갈 수 없는 아쉬운 심정을 이 와선대 화폭에 담은 것은 아닌지 감히 상상해본다. 그때 단원의 나이 40대면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체력이 되었을텐데.. 조물주가 빚은 천하의 비경들은 이곳 설악산이 아닌 금강산에서 담고자했던 생각도 가졌을 것 같다.
'계조굴(繼祖窟)'은 울산바위와 그 아래 목탁바위를 뚫고 석굴사원으로 지은 절인 계조암(繼祖庵)을 그린 것으로, 계조암은 신라 때인 652년(진덕여왕 6)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신흥사의 산내 암자이다. 목탁바위라 불리는 바위에 자리 잡고 있어서 다른 절에선 10년 걸릴 공부도 5년이면 끝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계조암 옆엔 그 유명한 흔들바위가 있는데 이곳도 고3 수학여행 때 와서 바위를 흔들어보곤 했다. 그땐 암자 뒤 위용넘치는 울산바위가 있는지도 몰랐다. 단원은 계조굴과 계조암, 흔들바위, 울산바위 모두를 화폭이 꽉 차도록 담았다. 계조굴 뒤쪽으로 울산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있고, 울산바위 바로 앞엔 푸른 활엽수가 무성하며 그 앞쪽에는 석굴사원인 계조암이 있는 커다란 바위가 있고, 사원옆엔 너럭바위와 흔들바위가 있다. 이 모든 풍광을 바라보고 서 있는 세 사람은 단원의 일행으로 보인다.
명나라의 문인화가 황공망은 '石爲山之骨(돌은 산의 뼈가 된다)'이라 하여 돌에 산의 정신이 깃들게 그려야함을 강조했다. 도교와 불교에 심취했던 단원이 그린 울산바위를 보면 돌에 기백이 넘치고, 그 기백을 통해 산의 정신인 기(氣)를 그려 넣으려 애썼다는 느낌을 받는다. 구도(構圖)적인 측면에선 울산바위를 아래에서 위로 바라봄에 더욱 웅장한 모습이 되었고, 계조암과 계조굴도 그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바로 정면에서 바라보아 크게 보이도록 했다. 바라보는 각도를 달리하여 두 대상의 크기를 비슷하게 하면서 똑같이 강조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난 울산바위를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울산바위야말로 진정한 '설악의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그 생명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단원의 그림을 제대로 모사하지 못한 나의 능력의 한계를 절감해본다. 3년 전 여름, 백담사에서 영시암~오세암까지만 걷고, 자신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는 봉정암엔 끝내 오르지 못하고 하산한 나의 한계를 발견하는 듯 하다.
20240917, Song s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