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천에서 놓친 그림을 그리고..
통천의 비경을 담은 그림 한 점을 또 놓쳤다. 단원이 총석정을 그린 후 다른 방향에서 총석정을 바라보면서 그 너머에 있는 정자를 그린 그림, '환선정'이다. 단원은 통천에서 옹천, 총석정, 시중대, 환선정을 그리고 본격적인 금강산 탐방에 나선다.
먼저 '환선정(喚仙亭)'을 연필로 그려본다. '환선정은 통천군 고저읍 총석리 바닷가 총석정 맞은편에 있는 정자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정자에 앉으면 신기한 모양의 돌기둥을 이룬 주상절리와 함께 탁 트인 동해바다를 바라볼 수 있어서 금강산 유람에 빠지지 않는 명소로서, 이 주변 경관을 '통천금강(通川金剛)’이라고도 불렀다한다. 주변의 절경이 신선을 불러들인다고 하여 부를 '환(喚)'자의 정자명을 붙였다.
단원은 총석정과 멀리 금강산에서 바닷쪽으로 흘러내린 크고 작은 산들, 기슭의 작은 마을까지도 포함하여 원근이 분명한 구도로 그림 중앙 공간에 환선정을 그려 넣었다. 꽤 높은 곳에서 그린 듯 아래로 굽어보는 총석정이 주위 경관과 어울려 더욱 비경의 느낌이 든다. 그런데 '총석정' 정자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환선정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그리지 않은 것은 아닌지? 그림을 그린 장소에선 보이지 않는 쌍천을 그려 넣은 설악산 '토왕폭' 에서도 그러했지만 단원의 화폭에서 가끔 임의의 상상력이 가미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쓴 소설이 재미있듯이 산수화도 어느정도 상상의 날개를 펴야 생명력이 살아나는가 보다.
'치폭(馳瀑)'은 외금강 발연동 구역에 있는 누운 폭포다. 발연사터에서 흰 너럭바위 한가운데로 흘러내리는 폭포로 길이는 약 60m, 경사도는 약 40°정도 된다고 한다. 금강산내 많고 많은 누운 폭포들 가운데서도 먼 옛날부터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이 '치폭'으로 폭포물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놀이터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림엔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골바닥이 마치 인공적으로 미끄럼대를 만들어놓은 것처럼 사람 하나 미끄러져 내려갈 만한 넓이로 패여 있다. 너럭바위를 보니 폭포는 아니지만 어릴적 고향 서원골 경사진 너럭바위에서의 물놀이가 생각난다. 발가벗은 몸으로 엉덩이가 새빨갛게 되도록 물 미끄럼을 탔던, 최치원이 지은 서원 옆 놀이터. 아버지가 우리들을 데리고 소풍가는 날엔 너럭바위 위에 음식물을 펼쳐 먹고 사진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치폭이 추억을 불러일으켜 주니 더 정겹게 보인다. 폭포 위 바위들도 범상치않다. 우측 오르막 길 끝엔 굴(窟) 같은 모습의 바위가 보인다. 금강산의 폭포 비경이라 함은 높은 곳에서 우레같은 소리를 내면서 세차게 쏟아지는 모습만 상상했는데 이렇게 동네 놀이터 같은 치폭이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에 '진정한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된다.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빼어남과 화려함보다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소박한 모습이야 말로 참다운 아름다움이 아닐까?
'만물초(萬物草)'는 외금강의 신계천(神溪川) 상류에 침식으로 형성된 바위산으로 '만물상'으로도 불리운다. 하늘을 찌를 듯한 거암(巨巖)들이 천태만상을 이루고 있다. '금강산은 곧 만물상'이라고 할 만큼 금강산을 대표하는 비경이다. 크고 다양한 기암들은 모두 신비스런 느낌을 준다. 그림을 보니 지구의 오랜 역사가 먼저 생각난다. 지구의 마그마가 지표상 흰색의 화강암 절리(節理), 기암괴석이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풍화와 침식 과정을 거쳤을까? 단원은 이곳을 찾았을 때 무슨 생각부터 했을까. 천하 제일의 비경을 노래한 수많은 문인들의 문장부터 기억했을까, 아니면 아무 말없이 거친 세월을 이겨낸 바위의 숭고한 역정을 생각했을까? 당시 단원의 나이 44~45세. 비경을 본 감탄과 함께 남은 자신의 생(生)도 바위같이 흔들림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가 그려낸 그림속에서 만물상같은 그의 마음을 발견해본다.
천하 제일의 산수, 금강산의 절경이 빚어낸 단원의 오만가지의 마음, 그 마음들이 숨어있는 화폭들!
20240927, Song s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