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둘레길 20구간(북한산 강북코스)
오늘은 2주 전 19구간에 이어 20구간을 걷는 날. 수명대장은 이번 걸음은 수유리 4.19국립묘지, 이준열사묘 등 애국지사들이 잠들고 있는 지역을 거치는 곳이라 참배시간을 고려하여 1시간 이른 오후 2시까지 화계역으로 모일 것을 사전 공지했다. 평택 집에선 전철로 약 2시간 20분 거리, 전철안에서 읽을 책 한권을 배낭에 넣어 집을 나선다. 오늘 걸음의 들머리 화계사일주문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건너편 계단길을 시작으로 소나무 숲길을 걷는다.
멧돼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철망을 설치해 놓은 사유지에 우회길로 가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약 800여 미터를 더 걷는 길에서 연리지(連理枝)를 만난다. 백낙천이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한 '장한가(長恨歌)'에서 양귀비가 "하늘에 있어서는 원컨대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원컨대 연리지가 되기를 원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암수 한몸의 부부사랑과 더불어 부모자식간 사랑에도 한몸이 되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숲길 좌측 사이사이로 보이는 북한산 백운대, 인수봉, 오봉산, 도봉산은 변함없이 아름답다. 데코 계단길을 내려가니 사찰 '본원정사'가 나타난다. 한때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도선사보다 더 많은 신도들의 기도행렬이 이어지던 곳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지금은 다소 쇠잔한 모습이다. 도로를 따라 약 100m 정도 내려오니 요양원이 나타난다. 친구들은 죽음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노쇠하여 어쩔 수 없이 요양원의 도움을 받아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온다면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장기기증도 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다수의 의견. 서글픈 생각이 들지만 삶과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세야말로 정신건강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통일교육원 후면을 옆으로 끼고 경사면을 올랐다가 내려가니 북한산 둘레길 흰구름길 구간 아치가 나타난다. 공원을 지나 이준열사 위훈비를 만난다.
이준 열사 묘지로 들어서는 입구엔 왕릉처럼 홍살문이 있다. 홍살문과 자유평화수호의 상을 지나 약 150미터 길을 오르면 열사의 묘가 있다. 길 양옆엔 생전 자필문구를 비석화하여 중간중간 만들어 놓았다. 이준열사의 말씀을 한자한자 읽어보니 열사의 의기와 사내의 웅지가 느껴진다.
"헤이그 밀사로 갔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게 되면 어느 누가 청산에 외서 술잔을 부어놓고 울어주려나. 바람 눈 서리도 언 자리에서 내가 죽은 뒤에 누구가 장차 좋은 술 가져다가 청산에서 울어주려나. 가을바람 쓸쓸한데 물조차 차구나. 대장부 한번 가면 어찌 다시 돌아오리." "사람이 죽는다하면 무엇을 죽는다하며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을 산다고 하는가. 죽어도 죽지 아니함이 있고 살아도 살지 아니함이 있다. 그릇 살면 죽음만 같지 못하고 잘 죽으면 도리어 영생한다. 살고 죽는 것이 다 나에게 있나니 모름지기 죽고 삶을 힘써 알지어다."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고
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초대부통령을 지낸 이시영선생묘도 찾아 참배한다. 전 가산을 털어 만주 신흥강습소를 세워 독립투사들을 길러냈고, 해방후엔 사법의 독립권, 바른 재판을 위해 힘쓰셨다는 사실에 오늘날 돈과 권력에 휘둘려 제자리를 잡지못하는 사법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시영 선생은 작금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특정 정당의 의회폭력에 주눅들지말고 추상같은 법의 심판을 내려 비틀거리는 3권분립의 헌법 정신을 다시 세워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이시영 선생이 임시정부의 파벌과 이권다툼으로 생각들이 갈라져 있음을 애통하며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 좋겠다. "문관이 돈을 탐하지않고, 무관이 죽기를 싫어하지 않으면 가히 천하를 회복할 수 있다"
한국광복군으로 중국 각 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국한 17명의 광복군 합동 묘소터를 방문하고 4.19국립묘지가 훤히 보이는 전망대에 섰다.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항거하다 순국한 열사들에게 묵념하고 우리는 이 현장을 방문한 의미를 우리 걸음에 남기고자 독사진을 찍었다. 오늘 걸음의 종착지 우이동 만남의 광장으로 나아가기 전 김창숙, 손병희 선생 묘소도 멀리서 사진으로 담았다.
애국지사들이 잠들어있는 우이동 하늘은 푸르렀고, 계곡물도 맑았던 오늘 걸음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살펴본 여행. 이해인 수녀의 詩가 생각난 서울둘레길 걸음이다.
산을 보며 / 이해인
늘 그렇게
고요하고 든든한
푸른 힘으로 나를 지켜주십시오
.....................
.....................
이름만 불러도 희망이 생기고
바라만 보아도 위로가 되는 산
그 푸른 침묵 속에
기도로 열리는 오늘입니다
다시 사랑할 힘을 주십시오
20241011,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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