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 21구간(북한산 도봉코스)
두 달 지나면 올 한해도 저물게된다. 푸른 용의 해 갑진년(甲辰年)을 해돋이로 맞이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쏜 화살처럼 흘렀다. 올 한해는 어떤 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 오늘 둘레길을 걸으면서 생각해 보기로했다. 둘레길 친구들도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한양을 한바퀴 휘감아 숲길, 마을길, 하천길 157Km를 도는 걸음에서 우린 생각과 마음을 어지간히 나누었기에 오늘 걸음을 나서는 나의 예감이 친구들의 예감과 별반 다름이 없을 것이라 확신해보는 것이다. 집을 나서면서 최근 받아든 봄비시인님의 시집, '시발(詩勃)'과 6. 25전쟁사 책을 배낭에 넣었다. 오늘의 둘레길 들머리인 북한산우이역까진 먼거리. 긴 시간동안 시인의 멋진 詩語가 뿜어내는 상념의 깊이와 크기가 나를 잡아주기에 적격이기에. 난 한꺼번에 많은 詩를 읽지 않는다. 제목을 보고 내 감정에 다가오는 한두 개 詩만 속으로 조용히 읊조리며 가슴에 담아보려 애쓴다. 내년 6월에 있을 학술세미나 발표 주제 관련 전쟁사 챕터도 읽어보면서 논문도 구상해보는 전철안 도서관이다.
어느듯 우이역에 도착하여 친구들과 '왕실묘역길' 입구를 통과하면서 둘레길 걸음을 시작한다. 오늘의 북한산 도봉코스는 왕실의 묘도 만나고, 지나번에 스쳐온 인수봉과 백운대에 이어 도봉의 주능선을 따라 흐르는 웅장한 도봉의 삼봉(선인봉, 만장봉, 자운봉)과 신선대를 감상할 수 있는 코스다. 가을 내음, 깊은 산내음을 맡으며 30여 분 걸으니 550년 묵은 큰 은행나무가 나타난다. 도봉자락에서 인간의 삶을 지켜본 수호신을 만난 듯하여 그 앞에 서서 우리들 모습을 담았다. 또 30여 분 걸으니 연산군묘와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의 묘가 나타난다. 뒤를 돌아보니 멀리 인수봉과 백운대가 눈안에 들어온다.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 태어난 정의공주는 성품이 부드럽고 지혜로와 세종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안맹담과 혼인하여 부부금슬도 좋아 죽어서도 여기 도봉의 자락에 함께 묻혀있다. 부모사랑과 남편사랑이 여자의 행복임을 두 봉분이 말해주는 듯하다.
잘 꾸며진 쌍둥이 전망대에 서니 한양을 삥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명대장은 하나도 빠짐없이 산 스토리를 들려준다. 자신이 직접 수없이 밟은 산들이기에 산높이와 특징, 정상에서 느껴본 감흥까지도 풀어놓는다. 강북의 산과 강남의 산은 산행길에서 밟는 돌(石)도 종류가 다르다고 설명한다. 50대에 강북 5산(불암, 수락, 사패, 도봉, 북한산)을 무박 17시간만에 종주한 경험을 들려준다. 산에 미쳤던 산사나이가 이젠 산을 정복하지 않고 산에 안겨 점점 다리에 힘이 빠져가는 친구들의 건강을 챙기고자 가벼운 둘레길을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도봉산을 배경으로 독사진을 찍어준다. 오늘 걸음을 기억하고자하는 인증사진. 병일이가 한양을 삥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산들을 파노라마로 담는다. 그 사진도 오랫동안 간직했음 좋겠다.
돌아보니 우린 참 많은 길을 걸었다. 지금은 둘레길을 함께 걷고있지만 고교 졸업 후 각자의 길에서 드문드문 인적이 끊긴 길도 걸었을 것이고, 화려한 파리 개선문앞 샹들리제 거리도 걸었을 것이다. 어떤 길이 좋았는지는 각자가 판단할 것이지만 난 지금 이렇게 함께 걷는 이 둘레길이 참 좋다. 우리 추억을 되돌아 보게하는 이 길이 참 좋다. 서로를 염려하고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는 우정의 이 길이 참 좋다. 길을 걸으면서,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면서 전립선, 신장, 고혈압에 좋다는 음식과 약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다. 오늘 걸음에서 시력이 안좋은 희수는 나무뿌리에 채여 두번이나 넘어졌다. 시력 회복에 좋은 약을 꼭 챙겨먹기 바란다.
소설가 김훈이 이야기한 '삶의길, 죽음의길, 죽어서 사는길, 살아서 죽는길' 같은 거창한 길이 아니어도 좋다. 오늘처럼 아름다운 우리 한양의 둘레길을 완주하여 우리의 이야기를 담도록 하자. 2주전 장인상을 치런 수명이가 친구들 조의에 감사한 마음으로 호스트한 저녁밥과 커피가 맛있고 고마웠던 오늘의 둘레길 걸음.
*우이역~연산군묘~쌍둥이 전망대~무수골~도봉산역(둘레길 7. 3km +추가 2.1km, 3시간 45분)
*(수명대장의 트레킹 평가) : 기온 22도, 맑은날씨에 적당한 구름과 습도가 조화된 최적의 트레킹 컨디션. 쌍둥이전망대 오름 길이 조금 긴듯 하였으나 전망대에서 바라본 산들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왔음. 서울 둘레길과 북한산 둘레길이 나뉘는 무수골에서, 북한산
둘레길 쪽으로 가는 바람에 2.1km, 45분을 더 걷게 된 점은 미안하게 생각함. 오늘 추가 걸음은 연탄불고기집 저녁식사와 커피로 보상함. ㅋ
20241024,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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