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산행

서울둘레길 18구간(북한산 종로코스)

도보사랑 2024. 9. 7. 11:44

서울둘레길 18구간(북한산 종로코스)

2주만에 걷는 길. 오늘은 지난 은평코스 걸음에 이어 18구간 북한산 종로코스를 걷는다. 불광역~장미공원~탕춘대~평창동길~형제봉 입구~ 롯데캐슬까지의 길이다. 오전에 부슬부슬 내렸던 비가 멈추고 서늘한 바람까지 불어 트레킹에 최적의 날씨다. 일산쪽 삼송동에 사는 춘근이가 합류하여 더 즐거운 걸음이 된다.

불광역에서 만나 장미동산으로 향한다. 처음부터 가파른 계단길이 계속되어 수명대장은 걸음 속도를 조금 낮춘다. 조망이 좋은 장미동산에 올라 북한산 주봉들을 바라보며 수명이의 멋진 산이야기를 듣는다. 좌측부터 우측으로 족두리봉~향로봉~비봉~사모바위~승가봉~문수봉~보현봉이 눈앞에 펼쳐진다. 보현봉 아래 오늘 걸음의 목적지 형제봉도 보인다. 난 작년 2월~4월간 이 북한산 봉우리들을 전부 솔로 산행으로 올라었다. 그때의 감흥이 되살아 나는 듯 하다. 특히 3월 5일 진흥왕순수비가 있는 비봉을 오를 때의 감흥. 그땐 진흥왕이 비석을 세운이래 1,200여 년 동안 잊혀져 온 비석 옆에 서(立) 본다는 기대감이 컸었다. 솔향이 짙고 웅혼한 암벽이 드리워진 북한산에 온전히 안긴다는 느낌도 강하게 들어 졸시도 읊어었다.

- 산에 안긴다는 것 -

산에 안긴다는 것은 산을 사랑하는 것

산에 안긴다는 것은
솔 내음에 바람의 향기를 느끼고
풀 한 포기 돋음에 잃었던 마음을 다시 살려내는 것

산에 안긴다는 것은
산길을 걸으며
옛 신화를 상상하고
옛 사람을 그리워하고  
옛 사랑에 고마워하는 것

산에 안긴다는 것은 결국은 산의 섭리에 감동하는 것  

산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산을 가슴에 품을 수 없다
산도 산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숨겨 둔 보물을 내어 놓지 않는다
산은 자신을 비우고
채우는 공간마저 버리는 사람을 사랑한다

오늘은 그때의 감흥보단 오래된 장맛 같은 친구들 마음에 젖어 낮은 둘레길을 걷는다. 높게 나는 독수리가 아닌 조금은 쓸쓸한 가을새가 되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홍조는 전쟁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친구다. 오늘은 다부동 전투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군출신인 난 6.25전쟁 발발의 배경부터 전쟁의 경과(특히 서울 함락~낙동강 워크 방어선까지), 다부동 전장의 특징, 백선엽 장군의 지휘, 마산~진동 전투의 의미까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풀어놓았다. 장교출신도 아닌 친구가 우리의 전쟁 역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고맙기만 하다.

조망이 좋은 곳에서 수명대장은 일일이 개인 독사진을 찍어준다. 그 사진들은 서울둘레길과 함께한 소중한 추억의 징표가 될 것이다. 솔이 우거진 숲길을 지나니 낮은 성벽과 암문이 나타난다. 탕춘대다. 그 이름이 연산군의 유희와 관련되어 지어졌다고 하니 씁쓰레한 느낌마저 든다.

어느듯 산을 내려와 평창동네길을 걷는다. 형제봉이 눈앞에 보이는데 꼬불꼬불, 오르막내리막 아스팔트 평창길을 걷는게 싶지가 않다. 북한산 자연을 배경으로 잘 지어진 집들, 갤러리, 종교시설들, 외국대사관(코트디부아르)도 보인다. 고풍스런 집 중엔 '풍류제(風流齊), 바람이 머물고 흘러가는 집'이라는 문패를 단 집도 있다. 인동초가 담벼락을 수놓은 집도 있다. 식물도감인 병일이는 '여름이 다 지나간 시기에 노란색이 아닌 붉은색의 인동초가 핀 것이 이색적'이라며 사진을 찍는다. 한강 방향을 바라보니 북악의 성곽과 팔각정, 인왕산, 남산타워, 관악산과 청계산, 백운산까지도 선명하게 보인다. 수명인 이렇게 조망이 좋은 날씨는 처음이라며 아름다운 한양 풍경을 배경으로 또 독사진을 찍어준다. 이 평창길을 가슴 깊숙이 담아라는 뜻이겠지. 하늘이 내리고 지각의 솟구침이 빚은 아름다운 북한산을 옆에 두고 있는 평창동 주민들은 복받은 사람들이다. 보현봉아래 양지 바른 곳에 작은 토방이라도 가져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 조선시대였음 가능했을 것이다. 지금은 너무 부촌이 되어버렸다. 부촌이라도 늘 바람이 머물면서 흘러가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인동초가 피어나는 평창 마을이 되었음 좋겠다.

저녁식사는 평창동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고풍스런 '토속칼국수집'에서 냉수와 무알콜 맥주로 목을 축인 후 전(煎)과 칼국수, 떡만두국을 먹었다. 식사 후 버스를 타고 경복궁역까지 나와 스벅에서 오늘 걸음에서 못다한 대화를 나눈다. 오늘 걸음에선 건강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춘근이가 매일 복용한다는 '비타민 C '의 효능, 고지혈 처방 문제 등. 결론은 과다한 약복용은 좋지 않고 매일 걷는 것이 건강유지의 비결! 홍조, 희수가 그것을 증명한다. 홍조는 혈색이 아주 좋아졌고, 희수는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확신이 들어 2주마다 걷는 우리 팀과는 별도로 동네 분들과 매주 서울둘레길을 걷고 있다. 우리가 걷는 길을 중복으로 걷고 또 걷는 것이다. '걷는 것이 답이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오늘 걸음이다.

*불광역~장미공원~탕춘대~평창마을길~형제봉입구~평창동 롯데캐슬
(9.38km, 3시간 30분 소요)
*(수명대장의 트레킹 평가) : 오전내내 부슬비가 내렸으나 트레킹 시점부터 멈추었고, 27도 내외의 기온에 선선한 바람이 부는 최적의 트레킹 여건이었음. 장미공원서 산길로 접어들면서 계속되는 데크계단길에 땀 좀 흘렸으나, 장미동산서 본 북한산 주능선의 멋진 조망으로 보상을 받음. 이후 보현봉과 형제봉이 점점 가까이 다가옴을 느낄 수 있는 오르내림이 계속되는 숲길을 걷다가 탕춘대를 지나면서 평창마을길로 접어듬. 오르막의 연속 마을길을 걷기가 조금 힘들었으나 관악산과 더 멀리 광교산, 백운산까지 또렷이 볼 수 있었기에 오랫동안 기억속에 남을만한 걸음이었음.

20240906, Song s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