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산행

서울둘레길 19구간(북한산 성북코스)

도보사랑 2024. 9. 30. 00:30

서울둘레길 19구간(북한산 성북코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어제 밤엔 그림을 습작하다 가을 바람을 느끼고 싶어 늦은 시간에 공원으로 나가니 강아지풀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거렸다. 맘카페에선 안성천에서 코스모스 축제가 열린다는 공지도 있었다. 오늘 9월의 마지막 길목에서 북한산 아래 성북 둘레길을 걷기 위해 강남 신논현역으로 가는 광역버스를 탄다. 신논현역에서 다시 지하철로 경복궁역으로 가야한다. 버스를 타니 수명대장으로부터 문자가 온다. 평택 사는 나에게 "집결지까지 이동거리가 너무 길어서 항상 짠 하요"라는 문자다. 둘레길 리더의 세심한 마음에 고마움을 느끼며 난 이동시간 동안 페북에 올렸던 글을 읽어보고 수정도 해본다. 전철안에서 작품 글을 쓰기도 하는 핸펀의 시대. 경복궁역엔 서울 사는 친구들보다 내가 먼저 도착했다. 경복궁 거리엔 한복을 입은 외국 관광객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한양은 이미 세계적인 도시로 이름나고 K-문화는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오늘은 식물도감 병일이가 내일 산청 호국원 선친 묘소에 가느라 불가피하게 참석을 못하고, 회사일로 바쁜 기웅이가 모처럼 합류했다. 버스를 타고 경복고~자하문~세검정을 지나 오늘의 둘레길 들머리 평창동 형제봉입구까지 간다. 유서 깊은 세검정을 지나치면서 수명대장은 "언제 시간을 내서 자연환경과 문화사적이 잘 어우러져 있고, 특히 이항복의 스토리가 있는 백사실 계곡을 걸어보자"고 제안한다. 서울둘레길은 아니지만 새로운 테마길이 하나 생겼다.

오늘 걷는 19구간은 형제봉입구에서~솔샘길
~북한산생태숲~화개사입구~화개역까지 약 8.5km 거리의 길이다. 형제봉 입구에서 잠깐 정비를 하는 시간에 기웅인 집에서 준비해온 원두커피를 아내들에게 선물하라며 나누어준다. 신경 곤두 세워야 할 중요 프로젝트를 앞두고도 친구 아내들까지 챙겨주는 그 마음이 고맙다. 숲길을 약 40여 분 걸어 솔샘길에 이르기 전 휴식을 취하는 장소에서 기웅인 "형제봉 입구에 핸펀을 두고 온 것 같다"고 말한다. 사업상 중요한 메모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는 핸펀.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기웅이와 수명대장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형제봉입구로 가고 나머진 계속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중간중간 기웅이 핸펀으로 전화해도 응답이 없다. 형제봉입구에 도착한 수명이로부터 연락이 왔다. 거기에도 없다며 경찰을 불렀다고. 경찰이 도착하여 친절하게 CCTV 및 기지국을 통해 핸펀 추적을 협조하는 과정에서 핸펀을 들고간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찾은 것이다. 집나간 핸펀을 찾느라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사이에 우린 북한산 생태숲을 지나 구름전망대까지 왔다. 수명이와 기웅인 저녁식사 장소인 수유리 식당으로 오기로 했고.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양의 풍경은 시원하다. 집나간 친구의 핸펀이 무사히 돌아와서 더 시원한 기분을 느낀다. 멀리 백운대~인수봉~영봉~오봉~도봉산~수락산~불암산~아차산~롯데타워까지 한양 전체를 담은 아름다운 조망은 오늘 걸음의 하이라이트. 수명이가 있었음 완벽한 산 스토리를 들을 수 있고 멋진 포즈의 독사진도 찍어 주었을텐데.. 오늘의 종착점 화계사 일주문까지 부지런히 걷는다. 걸으면서 난 역사에 관심이 많은 희수에게 최근 공부하고 있는 일본 근대사 이야기를 해준다. 제국주의 국제 정세하 천황, 에도막부, 지방 번주간 힘의 겨룸, 대정봉환이 있기까지 존왕양이의 움직임, 이러한 과정에서 막부를 무너뜨리고자한 죠수, 사츠마의 개혁세력들, 특히 요시다 쇼인과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에 대한 이야기도 해준다.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되 일본 중심의 새로운 국체, 메이지유신이 탄생하기까지의 스토리다. 홍조와는 오늘날 미국을 이끄는 두 세력, 글로벌리즘과 네셔널리즘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눈다. 문과반 출신들이라서 그런지 주로 역사와 경제, 문학에 관한 대화가 主다.

어느듯 화계사 일주문에 도착하여 식사장소인 '두껍다 회선생 수유점'으로 이동한다. 식사하면서 나누는 대화는 당연히 '집나간 핸펀'이다. 핸펀 잃어버린 경험담이 쏟아진다. 노년에 접어든 우린 잠깐 하는 사이에 치매현상이 발생한다. 어쩔 수 없는 서글픈 현실. 열심히 걷고 특정한 분야에 몰입해 보아도 찾아오는 자연의 순리는 거스를 수 없다. 경찰들이 출동하여 최선의 조치를 취해주는 모습에 희망을 가져보기도 한다.

아주 중요한 기록들이 담긴 핸펀을 무사히 찾아 즐거운 식사를 한 서울둘레길 19구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집나간 친구의 핸펀을 잡아 들이고자 수색에 나서는 바람에 함께 걷지못했던 리더는 내일이라도 혼자 걸어서 인증스템프를 찍겠다고 한다. 오늘 식사는 그놈의 말썽꾸리기를 옆에 끼고 산 기웅이가 샀다. 희수가 단양에서 사온 지방 증류주 '소나무와 학'을 반주로 마셨는데 쓰지 않고 좋았다. 집나간 핸펀이 돌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문명의 이기는 가끔 반란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잊지말았음 좋겠다. AI가 사회를 혼란속으로 몰고가기도 한다. 집에 와서 기웅이가 준 커피를 꺼내놓으며 그 집나간 놈 이야기를 늘어놓으니 아내 왈, '영감들, 핸펀을 목줄에 걸고 다녀야겠네'. 핀잔 같은 말에 괜히 이야기를 꺼낸 것 같아 치매와 함께 입조심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롯데캐슬~형제봉입구~명상길~솔샘길~휜구름길~화계사일주문~수유역
(8.5km, 3시간 소요)
*(29일 다시 가족과 함께 걸은 수명대장의 트레킹 평가) : 적당한 구름과 습도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 28도에 이르는 더위를 감해주는 최적의 날씨였음. 그렇게 힘들지 않은 구간으로서 소나무 위주의 숲속길이 운치를 더해주었음. 구간 끝지점에 위치한 구름전망대에서의 일망무제는 이번 19구간 트레킹의 백미. 백운대, 망경대, 인수봉부터 영봉, 오봉, 신선봉, 도봉산 주3봉을 거쳐 수락, 불암, 망우, 용마, 아차, 대모, 구룡산 등 보이지않는 산이 없고 더 멀리 축령산, 천마산, 용문산 통신탑과 유명산도 조망되었음. 트레킹 종점인 화계사일주문에 도착해서도 엄청난 조망을 통해 느꼈던 희열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은 멋진 트레킹.

20240928, Song s y


핸펀 가출을 인지한 장소

문제의 집나간 핸펀

책임감 강한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