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금정, 오대산중대
회양에서 스승 강세황을 만난 단원은 스승의 건강을 물으며 행장에서 화폭들을 꺼내놓는다. '사대부의 금강산 유람을 속된 짓'이라고 생각하는 스승앞에서 단원은 금강산 비경보단 뭇 묵객들의 서정이 묻어있는 죽서루, 어둠속에 빛나던 성류굴의 종유석, 파랑새 전설이 깃든 낙산사 홍련암을 본 느낌과 함께
바다와 더불어 살아가는 관동 백성들의 모습을 이야기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넌저시 정조가 이 그림들을 만족해할지 스승의 생각을 물었을 것이고, 일찍부터 제자를 조선제일의 화가로 인정해온 스승은 그림에대한 평가보다 제자의 노고에 대해 아낌없는 격려를 보냈을 것이다. 회양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낸 단원은 한양으로 갈 채비를 마치고 마지막 그림을 그리고자 피금정으로 향한다.
'금강산의 풍모를 바라보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속세를 떠나고 싶어한다'는 단발령을 넘어 강원도 김화(金化) 방향으로 가는 길에 금성(金城)이 있다. 금성을 조금 지나면 '옷깃을 풀어 젖히는 정자’란 뜻을 담고 있는 '피금정(披襟亭)'을 마주친다. 단원의 그림속 피금정 주변 풍경은 금성의 진산인 경파산(慶坡山)을 뒤로 두고 완만하게 흐르는 남대천변 가로수 길이 쭉 뻗어 있고, 그 옆엔 추수가 끝난 듯한 논밭이 넓게 펼쳐져있다. 단원의 일행인 듯 말을 탄 사람과 행장을 짊어진 사람들은 피금정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길을 나서는 모습이다. 사생유람의 피날레를 장식한 피금정에서 단원은 남대천변 길을 바라보며 그가 지나쳐온 사생유람의 길을 회고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을 듯 하다. 이 길을 따라 김화, 철원, 영평을 지나면 한양에 다다른다. 큰 일을 무사히 마치고 가족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간다는 생각에 걸음은 가벼웠을 것이다. 물과 들판을 사이에 두고 길을 걷는 단원의 등뒤로 동해에서 떠올라 금강산을 어루만지며 달려온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단원은 아쉬운 듯 옷깃을 풀어젖히는 정자를 뒤돌아보며 걸음을 재촉한다.
'오대산중대(五臺山中臺)'는 사생유람의 초기, 단원이 오대산 월정사에 머무르고 있을 때 그렸다. 월정사와 상원사, 사고(史庫)를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화폭에 담은 중대는 '불교의 성지'라는 상징성이 짙은 곳이다. 지금의 중대엔 사자암이 있다. 중대가 유명해진 이유는 중대 위쪽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기 때문이다. 중대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 때 월정사를 지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가서 문수보살의 계시를 받고 돌아와 세웠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양산 통도사, 오대산 중대, 설악산 봉정암, 영월 법흥사, 정선 정암사) 중의 하나다. 단원의 그림속 중대는 큰 암벽(모습이 사자처럼 생긴 모양이다) 아래에 있고, 적멸보궁은 그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직접 거기에 가 본 사람들은 사자암에서 약 1Km 정도의 거리로 계단 1,000개를 올라야 도달할 수 있다고한다. 불상없이 탑묘만 있는 작은 언덕에 묻힌 부처의 진신사리를 만나기 위해선 힘든 걸음을 걸어야 되는 모양이다. 오대산 신앙의 중심지, 한국불교의 성지 뒤에 우뚝 솟아있는 비로봉(1,563m)이 세상의 온갖 시름을 포용하는 듯 안락하고 고요한 느낌을 준다. 단원도 중대를 묘사하면서 그러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피금정'과 '오대산중대'를 마지막으로 단원의 '금강사군첩'에 수록된 산수화 60점 중 2점(무릉계, 오송대)을 제외한 모두를 모사해 보았다. 단원의 사생유람을 따라간 나의 자유여행이 끝나니 조금은 아쉬운 느낌이다. 그래도 조선의 최고 화가 김홍도를 만난 기쁨이 컸다. 그의 그림 '씨름'과 '서당'만 알고있었던 나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키워주었다. 화가의 그림세계에 대해 존경심을 갖게된 계기도 되었다. 그림을 통해 인간의 삶을 살펴보는 인문학산책의 중요성도 알게되었다.
*단원이 발로 밟았던 75곳 중 내려오는 그림은 60점으로 15점이 유실되었는지, 아니면 60점만 그렸는지 알수없지만 난 단원이 빠짐없이 75점 모두를 그렸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중 삼척 '무릉계'와 금강산 '오송대'는 금강사군첩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어서 그리지 않았다.
*2022년 찍은 항공 컬러 사진 '오대산 중대적멸보궁'은 인터넷에서 가져옴.
20241112,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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