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 2구간(덕릉고개 코스)
오늘은 24절기 중 20번 째,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 아직 눈 소식은 없지만 점차 추워지고 땅이 언다고하니 절기(節氣)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겠다는 생각에 조금 두꺼운 옷을 챙겨입고 서울둘레길을 걷기 위해 집을 나선다. 2주에 한번 둘레길을 찾는 우린 걸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눈다. 국제정세, 국내 경제상황, 건강, 노후 취미, 가족과 자녀들의 이야기 등 다양한 소재의 대화들이 우리가 지나친 걸음 걸음에 그 자취를 남긴다. 오늘 걸음의 들머리 당고개역으로 가는 전철안에서 어제 올렸던 페북 글을 다시 읽어보고, 밴드에 3회 연속 게재된 인산작가의 인문학산책 '한비자'와 세계명작 체호프의 '거울'도 또 읽어본다. 친구 병일이가 백두산에서 읊은 詩, '천지(天池)'도 음미해본다. 고교 때 공부를 제일 잘하여 서울대를 나와 대기업 CEO를 오랫동안 역임했던 친구가 퇴임 후엔 동네 문화센터에서 시를 배우고 있다고 했기에 한 수 보내주면 좋겠다는 나의 요청에
"처음으로 읊어본 졸시"라며 보내준 시다. 남은 둘레길 걸음이 친구의 시상(詩想)을 더욱 넓고, 깊게 해주면 좋겠다.
- 천지(天池) -
친구들과 난생 처음 백두산에 올랐다
우뚝 선 봉우리들 맑고 푸른 천지
하얀 구름을 거느리고
우리를 반기는데
산천은 말이 없고
사람들만 웅성웅성
서파 북파 우리가
걸어 올라간 길
중국인들 큰 소리로
떠들며 오가는데
나는 마냥 웃을 수가
없네
두 동강난 조국이
슬피 울어서
내 살아 북녘에서
백두 오를 수 있을까
구름국화 달나리 하늘매발톱 핀 고원을 지나
다시 환한 천지
볼 수 있을까
평화의 세상에
살 날 있을까.
그려. 우리 열심히 걸어서 건강 잘 유지하면 살아서 북녘땅을 통해 백두에 오를 수 있을꺼야. 그 땐 '천지2'가 탄생할거야. 우크라 전쟁이 더욱 격화되고, 백두산이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 전지전능한 신은 우리 인간세계에 평화를 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거지. 열심히 걸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네.
어느듯 2시간 20분이 훌쩍 지나 당고개역에 도착. 우린 원팀이 되어 157Km 구간의 일부를 걷기 시작한다. 오늘 걷는 걸음은 덕릉고개 코스.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묘가 이 코스길 부근에 있다하여 이름 붙여졌다. 이 구간은 긴 거리는 아니지만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고, 도시와 자연을 잇는 생태길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다. 처음부터 당고개공원 갈림길까지 오르막이다. 옆으로 수락산, 앞으로 불암산을 바라보며 걷는 가을 길, 말로 표현하기 힘든 운치를 가져다준다. 밟히는 낙엽이 쓸쓸함보다 고즈넉한 느낌을 준다. 갑진년이 저물어가는 시점에서 걷는 이 걸음에 우리의 소중한 추억들이 고운 모습으로 담기면 좋겠다. 카르페 디엠! 오로지 지금 주어진 이 시간에 감사해하고, 선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즐거움이 가슴속에 찾아들면 참 좋겠다.
조금 더 걸으니 '거인 손자국 바위'가 나타난다. 지난 1구간에선 '거인 발자국 바위'를 만났는데 오늘은 손자국. 거인의 손발을 다 만난 우리도 포용력 있고, 가슴속엔 늘 '카르페 디엠' 정신이 자리잡고 있는 진정한 거인이 되었음 좋겠다. 전망대에 서니 북한산 주능선이 마치 지리산 주능선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수명인 어제 안산을 다녀온 희수의 산행소감에 한양 궁궐 입지와 관련 안산과 북악산을 두고 무학대사와 정도전이 논쟁을 벌인 스토리를 자세하게 풀어놓는다. 산을 다니면 만물박사가 되는 것 같다. 산은 모든 것을 포용하기에. 오늘 걸음의 종착지인 '상계동 나들이 철쭉동산'에 이르기 전 또 기묘한 모양의 바위와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인 나무가지에 매달린 다양한 산악회리본을 만난다. 불암산~수락산~도봉산~북한산으로 무박종주를 단행한 산악인들의 흔적들. 한국인들은 왜 무리지어 산을 이렇게 찾는지? 건강을 위한 것외 다른 민족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수명이에게 그 이유를 넌저시 물으니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에 답이 있다고 말한다. 도인같은 대답에 난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생각해보니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그 귀한 마음들이 모인 단체의 성격을 설명한 것 같아 수긍이 갔다. 종착지 부근에 이르니 올 마지막 단풍인 냥 붉은색이 찬란하다. 이곳에서도 수명인 우리들 뒷모습을 담았다.
2주 후에 걸을 3구간(불암산 코스) 출발점에서 스템프를 미리 찍고 하산한다. 수락산과 불암산 사이, 서울시 노원구와 남양주시를 잇는 고개인 덕릉고갯길을 중간에 두고 '당고개공원 갈림길'에서부터 '상계동 나들이 철쭉동산'까지 걸은 오늘 걸음. 길은 짧았지만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되며 늦가을의 정취가 깊이 베인 한양의 자연경관을 만끽한 걸음. 저녁 식사 자리는 2주 전에 갔었던 '육전집'에서 또 가졌다. 다들 그집 주인장의 시원한 서비스와 육전맛이 좋았는가 보다. 식사간, 식사 후 커피숍에서의 경제(특히 금융) 분야 해박한 지식을 가진 친구들의 대화에 난 늘 눈이 깨어나는 느낌을 갖는다. '고객을 이용하지 말고 진정한 이익을 주는 마음을 가지면 큰 수익으로 돌아온다'는 수명이의 말에 '장사는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 조선의 거상 임상옥을 떠올리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이 축복의 둘레길 걸음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내일 삼성동 홍조 따님 결혼식장에서 다시 보세.
*당고개역~당고개역 갈림길~학림사갈림길~덕릉고개~상계동 철쭉동산~당고개역
(7.33km, 3시간 20분)
*(수명대장의 트레킹 평가) : 기온 10도의 맑은 날씨였으나, 바람이 제법 불어서 능선상에서는 간간히 썰렁한 기운을 느꼈던 트레킹. 전 1구간 수락산 코스와 마찬가지로 서울둘레길 특유의 오르내림 계단길이 지속적으로 반복 되었으나 그 길이가 길지 않아서 걷기에는 비교적 편안했으며, 늦가을의 운치를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는 코스였음. 트레킹을 끝내고 지난 차에 들렀던 '당고개육전집'에서 같은 메뉴로 저녁겸 뒤풀이를 하고 '이디야 커피'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들며 유익한 대화를 나눈 멋진 하루.
친구들, '누죽걸산'을 잊지마시게.
20241122,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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