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 3구간(불암산 코스)
매월 2, 4주차 금요일에 정기적으로 걷는 서울둘레길 걸음이 나의 사정으로 이번 주는 오늘 일요일(12월 15일)에 걷게 되었다. 휴일 개인적인 약속이 있음에도 일정 변경을 양해해준 친구들이 고맙기만하다.
영상 4~5도의 맑은 날씨지만 목도리와 바람막이를 준비해서 오라는 수명대장의 통보에 제법 두꺼운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들머리인 당고개역(불암산역으로 개칭)까진 약 2시간 50분이 소요. 책장에서 1980년 생도 때 구입한 책, '현대의 제왕학'을 꺼내 베낭에 넣었다. 법과 질서가 흐트러진 난세에 이책을 읽으며 조금의 위안을 얻고싶은 심정이다.
오늘 3구간 둘레길 (불암산 코스)은 당고개역~상계동 나들이 철쭉공원~불암산전망대~넓적바위~공릉산백세문~화랑대역까지 약 7.6km 거리다. 날씨는 맑고, 하늘은 푸르며 바람도 없다. 친구들을 만나 그간의 안부를 묻고 걸음을 시작하는 반복되는 행사이지만 늘 새로운 마음이다.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본다. 2주 전에 만났던 친구들과 함께하는 이 짧은 시간에 무슨 빅뉴스가 있을까만은 오래된 장맛처럼 훈훈한 온기가 있고, 거짓이 없고, 세상살이에 유사한 교감을 갖고 나누는 대화가 있기에 늘 신선하고 새로운 마음이 드는 것이리라. 오늘도 걸으면서 좋은 대화를 나누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에 머리터진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과의 예상되는 무역전쟁, 우크라전쟁의 종전 기미, 한국 바이오산업의 약진, 기후온난화 문제, 그리고 우리 민족의 혈통(흉노, 여진, 거란, 몽골, 왜 등 침략, 지배인들의 피가 섞여 실질적 단일민족은 아니라는 의견들. 그럼에도 고대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민족의 전통 피가 요서, 요동 등 북방 민족에게 뿌리를 내려 그들 민족들 역시 우리 피와 다름없다는 견해 등) 문제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대화를 나눈다.
어느듯 불암산 전망대에 이르러 청계산, 관악산, 북한산, 도봉산 등 우리가 지나쳐온 모든 산들을 바라본다. 이제 5코스를 남겨놓은 시점에서 '참 많이도 걸었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눈앞에 펼쳐진 한양의 모습들을 담아본다. 기이한 형상의 바위들(남근석, 여근석), 눈앞에 다가온 불암산 암벽, 태능숲, 나의 모교 화랑대의 모습도 담아본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산행인들도 많이 보인다. 다들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산을 오르는 것인지. 건강을 다지고자, 세상 시름을 잊고자, 다가온 고통을 털고자, 위안을 얻고자.. 수많은 이유로 산을 오른다. 그러한 점에서 산은 '카르페 디엠'의 수단이며 원천이다. 늘 깨어있는 정신으로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 행복인 것이다. 눈 앞에 보이는 최불암 선생님이 쓰신 비석 글이 이를 잘 말해준다.
불암산(佛巖山)이여!
- 불암산 명예산주, 방송인 최불암 -
이름이 너무 커서 어머니도 한번 불러보지 못한 채
내가 광대의 길에 들어서서 염치(廉恥)없이 사용한 죄스러움의 세월
그 웅장함과 은둔을 감히 모른 채
그 그늘에 몸을 붙여 살아왔습니다.
수천만대를 거쳐 노원(蘆原)을 안고 지켜온 큰 웅지의 품을 넘보아가며 터무니없이 불암산을 빌려 살아왔습니다.
용서(容恕)하십시요.
맞다. 우리 모두 죄스러움의 세월을 살아왔다. 어머니의 자애롭고 넉넉한 품같은 부처바위산(佛巖山)에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염치없이 살아왔다. 웅장하여도 뽐내지않고 은둔의 그늘이 되어 준 부모님, 스승의 은혜를 모른 채 자기만 잘난 채 우둔하게 살아왔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도 자각과 반성도 없이 비겁하게 살아가고 있다. 불암산 이름을 빌려 염치없이 살아왔다며 용서를 비는 광대의 고백에 우린 더 큰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느낀다.
오늘 걸음은 최불암 선생님의 글을 통해 지난 삶을 돌아보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친구들도 똑같은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웅장하면서도 말이 없는 산은 늘 우리 곁에 있으면서 우리를 부르고 있다. 오늘의 불암산 걸음은 60대 중반을 넘어서는 우리들에게 매사 감사해하며 선하게, 정의롭게 살아가기를 자각케했다. 한 달 전 무남독녀 귀한 딸을 시집 보내고 빈둥지 증후군을 앓고 있을 홍조가 결혼 축의에 감사하다며 저녁식사를 샀다. 맛있게 잘 먹었다. 선한 얼굴만큼이나 귀한 마음 씀이 늘 자랑스런 친구!
*당고개역~상계동 나들이철쭉공원~
불암산전망대~넓적바위~공릉산백세문~화랑대역(육사 화랑대역 관람 포함 총 9km, 3시간 3분)
*(수명대장의 트레킹 평가) : 기온 4도의 바람이 조금 부는 맑은 날씨였으나, 예상보다 포근했으며, 이전 코스에 비해 둘레길의 상태가 양호하고, 오르내림도 덜한 비교적 편안한 코스였음. 화랑대역(6호선)이 종착지임에도 (국철)화랑대역으로 가는 바람에 알바를 1.34km나 함으로써 2,000여보를 더 걷게 됨. 많이 걷는다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시게. 신내동 '길목연탄집'서 저녁겸 뒤풀이를 마치고 이디야커피점서 트레킹을 마무리한 좋은 하루. 늘 '누죽걸산'을 잊지마시게.
20241215,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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