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회동 북촌한옥마을은 늘 외국인들로 북적인다.
외국인들은 고풍스러운 한옥 모습을 연신 카메라에 담으며 '원더풀, 뷰티풀' 함성을 내뱉는다.
그만큼 한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한옥이 인기를 끌면서 한옥에 살고, 한옥에 투자하려는 내국인들도 늘고 있다.
공사비를 낮추고 공사기간도 대폭 줄인 한옥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매경이코노미는 대중화의 길로 들어선 우리나라 한옥 트렌드 변화상을 짚었다.
한옥을 직접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유의할 점은 없을지도 살펴봤다.
중소기업 임원으로 근무하다 올 초 퇴직한 오진수 씨(가명)는 요즘 수도권 외곽지역 땅을 알아보고 있다. 165㎡(50평) 남짓 땅을 사서 한옥을 짓기 위해서다. 여윳돈이 3억원 있지만 한옥 건축비 마련을 위해 현재 거주하고 있는 반포동 아파트 매각까지 고려 중이다. 오 씨는 "자식들이 모두 취직한 만큼 부부끼리 오붓한 노후생활을 즐기는 데 한옥만 한 상품이 없다고 본다"며 "어린 시절 추억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직접 한옥을 지어볼까 생각 중"이라고 전한다.
우리의 전통 가옥 한옥이 인기 주거상품으로 떠올랐다. 답답한 아파트 숲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 삼고 고전적인 정취를 만끽하려는 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한옥에 거주하는 걸 넘어서 외국인에게 임대하는 투자상품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전국 한옥은 2008년 5만5000가구에서 지난해 말 8만9000가구로 60% 이상 늘었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사장은 "아파트 값은 하락한 반면 한옥 가격은 계속 올라 한옥도 재테크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졌다. 외국인을 상대로 게스트하우스나 카페 등의 상업 목적으로 한옥을 구입하는 이들도 늘었다"며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하면서 답답한 아파트보다는 땅을 밟을 수 있는 한옥으로 수요가 몰린 것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모듈형 한옥 건축비 평당 500만원대
한때 한옥은 접근하기 어려운 상품으로 치부됐다. 건축비가 비싸고 가구 수가 많지 않아 한옥 입주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엔 다양한 한옥 모델이 등장해 문턱을 낮췄다.
대표적으로 조립식 한옥이 인기다. 일명 모듈형 한옥으로도 불리는데 대청마루와 기본 골조, 벽체, 문틀 등 각 부분을 공장에서 미리 만든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다. 기존 한옥은 현장에서 대부분 공정이 이뤄졌지만 모듈형 한옥은 전체 공정 중 70% 이상이 공장에서 진행된다. 일명 '프리패브(prefab) 방식'으로 공장에서 부품 가공과 조립을 하고 현장에서 설치만 하는 건축공법이다. 공사기간도 짧다. 현장 공사기간이 2주~1개월 정도로 기존 한옥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다. 목재는 프리컷(precut) 가공(목재 가공을 공장에서 기계로 대량 생산하는 것)을 하고 지붕과 벽체에 건식구조(물이나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시공)를 도입하는 방식이다.
공사비용도 대폭 낮아졌다. 일반 한옥 건축비는 대개 3.3㎡당 1000만원으로 북촌한옥마을 등지에서 최고급 자재를 사용해 시공하면 2000만원대까지 치솟는다. 그러나 모듈형 한옥은 480만~600만원대에 불과하다. 한 예로 2012 서울국제건축박람회에서 선보인 모듈형 한옥은 3.3㎡당 건축비가 480만원으로 방 2개, 거실, 툇마루가 있는 39㎡형 한옥을 6000만원 정도에 지을 수 있다.
한옥을 지을 때 각 지자체의 지원금을 활용하면 시공비용은 더 내려간다. 서울시는 지난 2009년 5월 제정한 '한옥보전 및 진흥에 관한 조례'를 통해 한옥 밀집지역에 한옥 형태의 단독주택이나 근린시설, 교육연구시설 등을 지을 경우 건축비의 3분의 2 범위 내에서 최대 8000만원을 보조해준다. 또 무이자로 3년 거치, 10년 균등분할상환 조건으로 최대 4000만원까지 융자를 받을 수도 있다. 경기도 수원시도 화성 지역에 한옥을 지을 경우 리모델링 비용의 2분의 1 범위 안에서 최대 6000만원을 보조해준다. 서울시와 같은 조건으로 최대 4000만원의 대출도 받을 수 있다. 심의를 거쳐 1회 3년 이내의 기간 연장도 가능하다.
지자체 지원금 활용해볼 만
한옥을 직접 시공하지 않고 기존 한옥을 구입할 수도 있다. 다만 한옥 시세는 일반 아파트에 비해 다소 높은 편이다. 현재 북촌한옥마을은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매매가가 3.3㎡당 평균 3000만원 안팎이다. 하지만 호가가 높아 실제 거래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운현궁SK부동산 관계자는 "호가는 3.3㎡당 최고 5000만원까지 올라갔다. 요즘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소유주들이 가격을 올려도 거래가 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호가가 너무 높다 보니 실제 거래되는 물건은 별로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선실 가회부동산 대표도 "지난해 말에 3.3㎡당 2700만원 수준에 거래가 됐는데 지금 나와 있는 매물은 3000만원 전후로 가격이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건축법상 층고제한이 걸려 있어 보통 12~16m 이상으로는 짓지 못한다. 진입로 확보가 안 되는 지역은 대부분이 단층이고 도로변에 있어도 높아야 3층 정도"라며 "용적률이 낮은 점도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물론 북촌한옥마을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서울, 수도권 지역에 한옥마을이 점차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은평뉴타운 내에 150여가구 은평한옥마을을 조성하기로 했다. 은평뉴타운 3-2지구에 위치한 한옥지구는 총 5만2000㎡ 규모로 들어선다.
한옥 규모는 1~2층 높이로 최소 188㎡에서 최대 441㎡까지 다양하다. 6월 중 토지 분양을 한다. 국토해양부도 경기 동탄신도시에 주택 300가구와 호텔, 컨벤션센터, 전통공원 등으로 구성된 한옥마을을 짓기로 했다.
민간업체들도 모듈형 한옥 공급에 나섰다. 한옥전문업체인 하루한옥은 전남 함평, 경남 산청 등지에 한옥 60여채를 공급했다. 부동산개발업체인 피데스개발도 지난해 10월 경기도 양주에서 전용면적 60㎡ 모듈형 한옥을 시범적으로 선보였다. 은퇴를 앞둔 50대 이상 베이비붐 세대를 공략할 계획이다.
손종욱 피데스개발 부장은 "건축비는 3.3㎡당 650만원 정도로 20평대 한옥을 지으면 건축비는 2억원도 채 안 든다. 전통 원목 대신 집성목과 철제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공사비를 줄였다"며 "마당의 땅값을 감안할 때 양주에서는 총 구입비용이 5억원 이하지만 판교 일대는 10억원대로 치솟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북촌한옥마을 임대수익률 5% 수준
한옥 투자가치는 어떨까. 당장 투자하기에는 임대수익률이 낮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현재 북촌한옥마을의 매매가격은 3.3㎡당 3000만원 안팎에 형성돼 있다. 116㎡(35평)를 매입할 경우 매매가격은 10억5000만원이다. 이 집에 월세를 놓으면 보증금 2억원에 매달 350만원 정도 월세 수입이 예상된다. 대출 없이 순수 자기 자본으로 투자할 경우 5% 정도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대출을 받아 투자하면 수익률은 더 내려간다. 연 6%대 금리로 5억원 정도 대출을 받을 경우 수익률은 3.4%에 불과하다. 일반 오피스텔이나 소형 아파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낮은 셈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 2월 말 기준 서울 25개구 오피스텔의 평균 임대수익률은 5.55%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은 미래가치 상승을 염두에 두고 장기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팀장은 "낡은 한옥들이 많기 때문에 구입한 후에도 신축이나 개·보수를 해야 해서 추가비용이 든다. 특수한 건물이다 보니 일반 주택에 비해 건축비가 높아서 리모델링 비용도 높다. 한옥을 매력적인 임대상품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라며 "임대수익보다는 희소성에 따른 보존가치를 보고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한옥의 인기에 거품이 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태욱 대신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서울시에서 한옥을 보존하기 위해 3~4년 전부터 지원을 많이 했다. 또 북촌한옥마을 주변 카페거리가 형성되면서 문화공간이 마련됐다. 한옥 자체가 가진 매력보다는 외부 요인에 의해 가치가 올랐다고 보면 된다"고 지적했다.
한옥의 단점도 여전히 많다. 한 가구씩 지을 수는 있지만 20가구가 넘는 대단지는 주택법 적용을 받아 사업 승인을 받고 청약도 거쳐야 한다. 한옥은 맞춤형 주택으로 수요자들 기호에 따라 구성이 천차만별인데 주택법을 적용받을 경우 수요를 맞추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위별로 미리 주문을 받고 제작하는 방식이다 보니 디자인, 구조가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 한옥 제작에 들어가는 나무, 흙, 돌 같은 재료도 구하기 어렵다. 손종욱 부장은 "아직 한옥 개념조차 모호해 일률적인 주택법 적용을 받는다는 게 문제"라며 "대규모로 지어야 공사단가를 줄일 수 있으므로 한옥 관련 규제를 풀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옥 구입 시 세제 혜택 줘야"
한옥을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상언 사장은 "한옥이 단순한 투자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려면 나무, 기와 등 자재 생산공장에 대한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태욱 선임연구위원은 "전통 한옥의 장단점을 면밀히 조사한 후 장점만을 살린 개량한옥을 활성화해야 할 때"라며 "한옥을 새로 짓거나 기존 한옥을 구입할 때 취등록세, 보유세 혜택을 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사진 : 박정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58호(12.05.23~5.29 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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