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아차산성에서..(2019. 8. 11, 일)
서기 414년 고구려 장수왕은 주몽의 건국과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대외정복 업적을 주로 기록한 비를 집안현 통구에 세웠다. 수도를 평양으로 옮겨 남진정책을 추진한 장수왕 자신의 남한강유역 정복 업적은 충주 가금면에 있는 고구려중원비에 새겨져있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시대의 공간, 만주와 한반도 남쪽 유역의 중간에 전략적 요충지 한강유역이 있다. 아차산은 삼국이 서로 차지하고자한 한강유역의 중심산이다. 산은 그렇게 높지않으나 정상부근 어느곳에서든 한강유역 일대 360도 방향 전체를 조망할수 있다. 한성백제는 일찍부터 이곳에 산성을 쌓았다. 고구려는 이곳을 정복하여 수많은 보루를 세웠다. 신라 진흥왕은 고구려 온달장군과의 아차산 전투에서 승리하여 북진의 기틀을 닦았다.
한성백제의 역사에서 개로왕(21대, 455~475년)의 죽음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고구려군에의해 참수당한 그의 죽음으로 한성백제가 끝나고 웅진백제의 역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개로왕이 어디에서 참수당했는가 하는점은 한성백제의 왕성인 위례성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와 함께 백제역사를 바라봄에 있어서 나의 중요한 관심사였다.
오늘날 송파구 풍납토성이 위례성이었다는것이 거의 정설로 자리잡고 있지만 난 산을 낀 산성을 중심으로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방비한 고구려 주몽의 후손인 온조와 비류가 과연 평지지역에 토성을 쌓았겠느냐 하는 의문에서 시작되어 한성백제의 위례성은 남한산성 아래 하남지역 아니면 이곳 아차산-용마산 지역이라고 감히 상상해본다. 어떤 역사학자는 하남위례성과 하북위례성을 구분하며 아차산지역이 한성백제의 하북위례성이라고 주장한다. 어쨋든 개로왕은 결박되어 아단산성(아차산성) 아래에서 참수당했다는 기록(삼국사기 권 25, 백제본기 3)을 오늘 발견하였다. 나의 상상의 하나가 풀린것이다.
이러한 역사현장을 마음맞는 고교 친구들과 걸었다. 약 4.5시간동안 아차산-용마산 전구간 11Km를 걸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삼국의 역사는 물론 고대 홍산문화, 가야와 일본, 중국역사, 조선 송시열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지식을 뿜어내는 친구가 있었기에 오늘의 발걸음은 참으로 의미가 있었다. 날씨도 따가운 햇볕은 있었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 좋았다. 정상에서 유유히 흐르는 역사의 강, 한강과 삼각산등 한양을 감싸는 동서남북 전체 산을 사진에 담았다. 발전하는 대한민국의 부를 상징하는듯한 롯데타워도 담았다. 오늘의 산행을 기획하고 사전 답사까지 해준 친구 성00 원장, 이00 박사가 고맙다. 우리가 건강을 유지하여 오늘과 같은 테마발걸음이 지속되었음 참 좋겠다.
삼국의 역사를 품은 이곳 용마산 정상에 휘날리는 태극기가 우리의 땅을 지킴은 물론 반일을 넘어 이웃과 교류하면서 세상을 이롭게, 풍요롭게 하는 상징이 되었음 좋겠다. 우린 홍익인간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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