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여행, 대마도(2019. 10. 27~28)
부산에서 뱃길로 49Km 떨어진 對馬島, 쾌속선 오션 플라워호로 1시간 10분 거리다. 섬의 가을 하늘은 맑았고 배가 도착한 히타카츠항의 바다는 오물 한점없이 깨끗하고 푸르다.
관광객이 많지않아서인지 항구는 조용하고 거리엔 인적도 드물다. 히타카츠에서 섬의 남쪽에 성을 쌓고 이곳을 다스린 島主가 있던 이즈하라까진 버스로 약 1시간 30분 거리다. 길은 좁고 굴곡이 심하다.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우거진 섬, 농사지을수 있는 땅이 부족하여 바다로 나갈수밖에 없었던 섬, 대륙의 문물이 차단되었던 섬이었기에 왜구들이 삶의 몸부림을 쳤던것같다.
쓰시마는 수백개의 작은 섬들을 가지고 있지만 본섬은 남북 82Km, 동서 12Km폭을 가진 하나의 섬이다. 그러나 러일전쟁을 앞두고 군사적 목적으로 운하를 만들면서 남북이 분리되었다. 운하가 있는 지역에 萬關橋가 생겼다.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운하는 큰 군함이 통과할수 있을까 의문을 가질정도로 폭이 좁아보였다. 사세보, 후쿠오카등 일본본토에서 한반도를 직접 바라보는 섬의 서쪽까지의 항해거리를 줄이고 대한해협을 통제할 군함을 배치하기위해 운하를 건설한 일인들의 준비성, 치밀성이 놀랍다. 작금의 한일 경제전쟁, 반도체 소재 수출통제도 오래동안 준비했을것이다.
이즈하라에 도착할 즈음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세종때 이종무가 군사를 이끌고 이 섬에 왔을때 남쪽 이즈하라까진 내려오진 않았을것 같다는... 島主를 사로잡고 완전히 굴복시킨후 관리를 파견하였다면 섬은 쓰시마가 아닌 아름다운 한국이름의 섬이 되었을 것이다. 정벌의 구체적인 기록을 찾아보아야겠다.
덕혜옹주 결혼 봉축기념비가 있는 작은 공원(城의 흔적이 있다)을 방문하여 그녀의 남편 소타케유키(종무지)에대한 소개와 함께 그녀의 불행했던 삶의 흔적을 더듬어본다. 음악, 미술, 문학에 능했던 그녀의 日人 남편 종무지는 나라잃고 따돌림 받으며 적응하지 못했던 조선의 이 가냘픈 여인 덕혜를 사랑했을것 같다.
최익현의 흔적이 있는 초당지, 1906년 상투를 자르려는 日 간수에게 호통치고 단식으로 아사 순국한 곳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811년 조선통신사 일행이 향응을 즐긴곳도 이곳이다.
토리이이, 새(鳥)가 앉아있는 신사, 각각의 3개 계단을 오르면 각각의 신이 모셔져있다. 무수한 전쟁속에 죽어간 영혼을 달래기위한 전쟁의 神, 임나일본부설과 관련된 신공황후 神, 천주교신자였던 소서행장의 딸 마리아 神을 모신 사당이다. 일인들은 10만개 이상의 신을 가지고있다. 자연, 인물 뿐만아니라 먹는 카스테라빵도 신으로 모신다. 노벨상을 받는 이성적, 합리적인 천재들이 천황과 神의 세계속에 있다는 사실, 속내는 따로 있다는 일인들을 다시한번 생각지 않을수 없다.
화재에 대비해 돌담으로 방화벽을 구축한 사무라이 거리와 무사주택들을 둘러본다. 춘향전을 일본에 최초 소개한 작가 나카라이 토슈이 기념관, 부친이 의사인 토슈이는 어릴적 부산 초량왜관에서 살아 한국어가 능통했다고한다. 1892년 150회에 걸쳐 아사히신문에 연재한 그의 소설 '코사후쿠카제'(변방에 부는 바람)가 유명하다. 쓰시마번의 무사가 부산에서 양반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이다. 그는 32세때 그의 소설에 감명을 받고 그를 찾아온 20세 미모의 처녀와 결혼하고 그녀 역시 유명작가로 데뷔했다고한다. 일본 지폐 5,000엔에 그려져있는 히구찌이치요가 그녀이다.
'나기'(바람이 쉬어가는곳)라는 숙소 다다미방에서 잠을 잤다. 두섬 사이 붉게 떠오르며 날(日)을 빍히는 새벽 일출, 섬봉우리 사이 꽃이 활짝피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틀날, 북으로 만관교를 다시 지나 대마도 유일의 용왕신사인 와타즈미 신사를 둘러본다. 바다에 토리이가 세워져있는 이유는 바다의 신인 용왕이 수중 토리이를 통해 육지에 서있는 토리이를 통과하여 신전으로 들어왔다고 믿기때문이라한다. 이는 일본 천황의 피가 바다를 건너온 한반도 도래인의 피라는 의미가 아닐까.
신사에서 조금 떨어진 에바시타케 전망대, 아소만의 올망졸망한 섬들은 하롱베이를 연상케한다. 푸른 비취색 하늘과 바다, 섬과 육지, 사람과 자연이 따로 없다.
맑은날 부산항을 볼수있는 한국전망대, 이곳엔 '조선국 역관사 순난지비'가 있다. 교린 외교정책의 절정기 숙종때 21대 대마도주 종의진을 조문하고, 22대 종의방 취임을 축하하기위한 조선의 역관 108명을 태운 배가 이곳에서 태풍을 만나 침몰하여 전부 숨졌다. 교린, 우호의 한일 역사를 되돌아본다.
마지막으로 일본을 4대강국으로 만든 도노자키 해전지를 둘러본다. 도노자키는 1905년 5월 27일 도고헤이하치로 제독이 이끄는 연합함대가 러시아 로제스트 빈스키 사령관의 발틱함대를 격파하고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곳이다. 메이지 38년 쓰시마 바다에 운명을 걸었던 해전, 이 땅의 사람들은 '일전의 전쟁(코나이다노 전쟁)'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겐 세계 역사의 주역이 되기위한 일전의 전쟁을 각오한적은 있는지..
전쟁에 승리한 도고는 이순신을 가장 존경했고 그의 전쟁술에 심취했다.
도노자키에서 인접한 미우다해변을 걸어보면서 생각해본다. 쓰시마는 과연 어떤곳인가. 한국의 땅인가 일본의 땅인가. 도주가 끊임없이 조선의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먹을것 배울것을 가져가고, 이종무에게 정벌당했으며 임진왜란, 정유재란이 끝난 8년후 교린이 다시 시작되어 약 200년간 조선통신사가 오고갔던 길목에 있었던 이곳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지...
지금 쓰시마는 일본이 결코 포기할수 없는 땅이 되었다. 중국은 물론 러시아의 진출을 차단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우리와는 가장 가까운 곳이지만 먼나라 땅처럼 되어버렸다. 공짜와 가짜가 없는 나라가 일본이라한다. 반일에 앞서 극일을 먼저 하고싶다면 부산에서 49Km밖에 떨어져 있지않은 한일역사의 땅, 쓰시마로 가보기를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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