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처인성

도보사랑 2023. 9. 19. 00:27

처인성(處仁城)

누가 '生居鎭川 死後龍仁'이라 했나. 인구 100만을 돌파한 용인, 인구 절감의 진천을 보면 오히려 '生居龍仁 死後鎭川'의 느낌이 든다.

처인성을 찾아 용인에 오니 나지막한 야산들이 많이 나타난다. 평지에서는 한 치가 높으면 산이요 한 치가 낮으면 물이라고 하였는데 낮은 산들이 여기저기 뭉쳐 있으니 생기가 넘치는 느낌이다.

용인 땅엔 물도 풍부하다. 용인의 주산 석성산(471.3m)을 중심으로 3갈래의 물길이 흐른다. 경안천은 동북쪽으로 흘러 팔당댐의 한강물과 합수하고, 탄천은 구성~수지~분당~송파를 지나 한강과 합수하며, 오산천은 남쪽으로 신갈~기흥~진위를 지나 아산만으로 흘러가니 용인은 크게 보면 일산삼수(一山三水)의 땅인 것이다.

이런 땅 용인 처인구에서 지금으로부터 791년 전 고려 부곡민과 몽골 정예군간 전투가 있었다.
처인성 전투.. 승려 김윤후가 관군, 중앙의 별초군이 파견되지 않은 이곳 처인성에서 부곡민과 함께 성을 사수하면서 적장 살리타이를 사살하였다. 몽골군의 남진을 좌절시키면서 고려가 강화도에 방어체계를 형성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했다.

토성의 크기가 축구장만하다. 군량미를 보관한 군창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창고 방벽을 쌓고 높이와 면적을 확장시키다보니 방어가 가능한 토성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래를 굽어볼 수 있는 언덕에 오르니 대몽항쟁의 전승지라고 하나 초토화된 국토에 유일한 생존 섬(島)에 선 느낌이다. 몽골군의 말발굽이 지나간 자리엔 개미새끼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했다고 하니..  

김윤후와 부곡민의 용기와 의기가 서려있는 성곽을 한바퀴 걸어본다. 해는 중천에서 서쪽으로 늬엇늬엇 넘어가고 있다. 언제 심었는지 모를 느티나무는 그때 싸움의 이야기를 간직하는 듯 하다. 소풍나온 부모는 아이들에게 전쟁과 백성의 삶, 영웅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지..

용인의 땅은 조선 사대부들에겐 죽어서 복을 받는 땅으로 평가받았다. 한양에서 백리까지는 왕릉이 들어섰기에 사대부들도 한양 백리를 벗어나 발복의 땅을 찾아 나섰다.

세계 최강의 몽골군과 싸워 일전의 승리를 가져온 용인의 땅은 죽어 발복을 기원하는 땅이 아니라 살기위해 처절하게 싸운 생의 땅으로 봄이 마땅하다. 고려때도 그러했지만 산업의 쌀을 심은 삼성전자도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한편으론 이병철 회장이 이곳에 묻힌 사실에 死後龍仁이 맞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20230917,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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