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일지

솎아낸 알타리무우

도보사랑 2023. 11. 1. 00:49

솎아낸 알타리무우

오늘따라 야생 국화 향기가 짙은 배미마을 농장. 김장배추는 그새 무성하게 자랐다.

크기가 들쭉날쭉인 알타리무우를 많이 솎아냈다. 두 달 전에 김장배추와 함께 심은 무우는 5개만 뽑았다. 고추 지지대와 말뚝을 전부 제거한 고추밭을 빗자루로 쓸고 그 두둑에 또 쪽파를 파종했다.

고추밭을 비로 쓸면서 문득 어제 읽은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나오는 일부 글이 떠오른 이유는?
1970년과 1971년에 쓰신 '잊을 수 없는 사람'과 '미리 쓰는 유서'라는 제목의 짧은 두 글.

'잊을 수 없는 사람'은 법정스님이 출가한지 얼마 안되었던 시기에 쌍계사에서 짧은 기간 함께 불도를 수행한 도반(道伴)으로서 이승에선 짧은 生을 사신 수연(水然) 스님에 관한 글. 찬(饌)과 국을 맛있게 요리하고, 언제나 말이 없이 미소와 행동으로 대답했던 분으로서 한 날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는데 호주머니에서 작은 칼을 꺼내어 빠지려고 하는 버스 창 나사 두 개를 조여 법정스님이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미리 쓰는 유서'는 生과 死가 결코 절연되어 있지않다는 내용이었다. 난 글을 읽으면서 일부 내용을 메모장에 옮겨 적기도했다.

오늘 내가 흙에서 뽑아 낸 농작물들도 수연 스님같이 묵묵히 거짓없는 뿌리를 내리고, 크게 자라 아무 조건없이 기꺼이 내어주고, 은은한 향기마저 뿜어내어 사람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깊지만 짧은 생명들..

처형은 떫은 감, 쪽파까지 포함하여 다듬은 알타리무우를 차 트렁크에 바리바리 넣어주신다.
두 분이 힘들게 노동하여 키우신 것을 이렇게 많이 주시는지..
다 먹지도 못하는데..
꼭 필요한 만큼만 갖는 무소유가 답인데..
고마움을 느끼는 나의 마음 한 켠엔 이런 생각도 자리잡고 있다.

복에 겨운 생각이다.
책도 잘 선정해서 읽어야겠다. 부질없는 생각을 하지않도록..

20231028,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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