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산행

앵초싹, 그 생명

도보사랑 2024. 3. 23. 22:54

앵초싹, 그 생명

산은 오를 때마다 다른 감흥을 느낀다. 계절에 따라 색감을 달리하는 산 자체가 주는 느낌보다는 산을 오르는 시간, 오르기 전 가졌던 마음 상태에 따라 산행이 주는 느낌이 다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말에 찾는 산, 집에서 차로 30여 분 소요되는 거리에 있는 서운산을 찾는 이유는 높지도 낮지도 않고, 정상으로 가는 길에 숨은 비밀의 공간인 앵초밭이 있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안성 넓은 들이 평화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오후 한 시에 올랐다. 산행 초입 낭구네집 좌판에 있는 냉이, 민들레(한 봉지에 3,000원, 할머니의 수확 노고에 비해 너무 싸다)를 찜해 놓고 청룡사를 지나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의 목적은 앵초싹이 올라왔는지 확인하는 것. 지난 주엔 싹이 움트지 않았다. 불과 일주일만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준비를 마쳤을까? 작년엔 4월 7일에 예쁜 꽃을 피운 앵초를 만났었다. 생명을 피우는 그 신비를 오늘 보고 싶다.

은적암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처음 마주치는 밭. 지난 주엔 밭주인이 로터리를 치고 밭 중간 중간에 두엄을 뿌렸다. 밭갈이를 마친 밭 옆 두둑엔 싱싱한 봄동이 돋아나 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파릇파릇 올라온 봄동, 아내는 밭주인이 있음 사고 싶다고 한다. 겉절이로 무쳐서 먹으면 맛이 있다고.

작은 돌을 올려 소원을 비는 돌탑을 지나니 얕은 개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산수유 꽃망울 터지는 소리, 개울을 스쳐 산죽 숲속으로 흐르는 바람소리도 들리는 듯 하다. 늦은 시간에 주는 산의 그윽함에 착하지도 않는 난 순해지려한다. 3년 전 우리 곁을 떠난 애견 '바른이'가 생각난다. 태어난지 10일이 지나서 우리 집에 와서 18년 동안이나 함께 살다 하늘 나라로 간 바른이. 바른이란 이름을 지어준 아내는 자식들 이상으로 사랑을 주었다. 바른인 집 안에서 절대 오줌이나 변을 보지 않았다. 난 늙어 앞이 안보이고 기력이 떨어진 바른이를 안고 밖으로 자주 나갔다. 생명이 다할 즈음 그렇게 나와 함께 했다. 군에 있다는 핑계로 부모님께도 그러한 사랑과 정성을 보여주지 못한 불효자 나였다.  

작지도 않은 소나무 가지가 꺾여 쓰러져 있다. 무거운 겨울눈을 이겨내지 못했나 보다. 강한 의지에 굳은 뜻을 품고 가는 사람도 간혹 쓰러지기도 한다. 인간은 솔(率)보다 더 허약한 존재, 그리고 늘 외롭고 허전한 존재. 최선을 다해 살면서
결실을 얻었고, 후회가 없다는 확신을 가져도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는 존재. 가끔 절망하면서도 가지고 갈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며 마음을 비우기도 하는 존재. 그러나 난 최근에 양심의 가책도 없이 무지막지한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많이 본다. 지은 죄로 법의 심판을 앞두고 있는 정치인이 부끄럼도 없이 노골적인 거짓 언동을 퍼붓는 모습에, 거기에 선동당하는 대중들의 모습에 참담함을 느낀다. 사회가 이렇게 돌아가선 안된다는 생각에 옛날 현자들은 어떤 지혜의 말씀을 하셨는지 찾아보기도 한다.

나부터 순해지고, 바른 마음을 가지려 애를 써야겠지. 우리 순둥이 바른이처럼 그렇게 살아야겠지. 착한 생명!

난 앵초밭으로 간다. 4월 초에 피는 앵초화, 오늘은 10일 전에 왔다. 지난 주에 이어 기다림에 목말라 또 왔다. 싹이라도 올라왔음 좋겠다. 나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질긴 생명의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습기가 있는 비밀의 정원에 들어서니 바짝 마른 낙엽이 수북하다. 손으로 낙엽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니 우와~ 귀여운 앵초 싹이 얼굴을 내민다. 혹여 발로 밟을까 봐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군데 군데 낙엽을 걷어본다. 바위 틈새에서 어린 모습을 선 보인 앵초 싹들. 난 그 모습들을 전부 폰에 담는다. 그리고 어린 싹이 햇볕에 탈까 봐 다시 낙엽을 가볍게 덮어 준다.

올핸 모든 봄꽃들이 1주일 정도 일찍 핀다. 진해 벚꽃도 그러하다는 보도가 있었다. 다음주 4. 2~4일에 예쁜 분홍색 앵초꽃을 피울 것 같다.

그 때 다시 오마.

- 앵초싹, 그 생명 -

생명엔 전율한다
생명을 바라볼 때 설레는 마음 그것이 전율이다.

전율하지 않으면 사랑이 없다는 것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절박한 순간에
목마른 사랑에
기다리고 기다린 애타는 순간에
전율한다

생명 앞에선 누구나 전율한다
영원한 사랑은 생명앞에서 탄생한다

20240323, Song s y

20240323, 앵초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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