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Truth
매일 이른 아침 나의 잠을 깨우는 인산 편지. 인산 작가가 1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띄우는 인문학 편지다. 난 2016년부터 이 귀한 편지를 염치없이 받아보면서 사유의 깊이, 통찰의 기회를 가져왔다. 인생 2막을 사는 나에겐 나를 되돌아보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무척 고마운 편지다.
오늘은 인문학 산책편 '조작의 역사, 역사의 조작'이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주제를 함축하는 사진엔 'Post-Truth'란 큼직한 글이 씌어져 있었다.
인산 작가는
"탈진실의 역사, 조작의 역사는 아주 깊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탈진실의 시대이고, 가짜뉴스의 시대이고, 조작의 시대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나 깨어있는 정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한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 있고, 많은 사람을 잠깐 속일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것이 우리가 믿는 인간의 위대함이다.
우리나라의 정치권이, 의사 집단이 탈진실이 아닌 진실을 바라보길 원한다. 가짜와 조작을 통해 사익을 추구하기보다는 나라와 사회와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을 걸어가길 원한다.
우리 국민도 진실을 보는 혜안을 가지고 지금까지 우리를 얽어매었던 지역과 이념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오직 현재와 미래를 위해 올바른 사람을 뽑고, 응원하길 원한다. 우리 국민의 집단지성의 힘을 믿고 또 믿는다"고 결언지었다.
나의 머릿속엔 하루종일 이 편지글이 맴돌았다.
지난 18일 서울에서 개최된 제 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도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가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있기에 국제사회의 연대가 필요함을 강조했다"는 언론 보도 내용도 있었다.
난 생각해본다. 우리 사회에서 가짜뉴스 퇴치 방법은 없는지? 인간이 만들어 낸 이 무서운 적을 퇴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옥석을 가리는 지혜, 양심에 기대는 용기, 사회 정의를 믿는 신념을 갖는 것"이라고 나름 결론을 내려보지만 국가가, 사회가, 국민의 집단지성으로도 퇴치못하는 이 문명의 해악을 없애기엔 너무나 허약하고 뜬구름 잡는 생각이기에 자조적인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죄를 지어 사법 심판을 앞두고 있는 인물이 빳빳하게 머리를 처들고 국민앞에서 허위의 선동적 언동을 일삼는 대한민국이 되어선 안된다"는 것.
집으로 오니 아내가 지난 해에 담은 김장 김치를 가지러 처형네 농장으로 가자고 한다. 가서 냉이도 캐자면서.
늦은 시간 봄비 흩뿌리는 날씨에 농장으로 왔다. 냉이도 캐고 올해 농사지을 땅 밭갈이도 도왔다. 그럼에도 생각은 엉뚱한 곳에 가 있었다.
- 봄비 흩뿌리는 날 -
이곳은 배미마을 처형네 농장
냉이 캐러 밭에 서니
진한 흙냄새
건너편 소(牛) 먹이용 작물을 심은 밭
두엄 냄새가 비에 실려온다
투박한 손으로
흙을 일구고 사는 이곳엔
적어도 거짓과 기만에 찌든 고약한 냄새는 없다
낮은 언덕 너머로 지는 해거름이
사시사철 뿌린만큼 거두는
선량한 마음만 담아가기를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속지 않고 사는 길이 분명 있음을 믿기를
20240325, Song s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