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 7구간(일자산 코스)
오늘은 고향친구들과 서울둘레길 걷는 날.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수명대장이 코스를 선정하느라 고생했다. 원래는 13구간(안양천상류 코스, 석수역~구일역)을 걸을 계획이었으나 장마 뒤 찜통더위가 예상되어 숲이 있는 7구간(일자산 코스)으로 변경한다는 통지가 왔었다. 그러던 차에 트레킹 이틀을 앞두고 오늘의 날씨가 비가 내릴 예정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그래서 수명인 친구들의 의견을 들어 비가 와도 쉬이 걸을 수 있는 안양천상류 코스로 다시 변경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평택엔 비가 오지않는다. 예정된 둘레길 안양지역엔 비가 내리나? 비를 맞으며 하천을 낀 평지 둘레길을 걸으면 또 무슨 사연을 만날 수 있을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베낭을 꾸리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오늘 서울, 수도권 지역엔 비가 오지 않는 무더운 날씨이기에 다시 일자산 코스로 변경한다고. 집을 나서기 불과 한 시간 전에 최종 통보가 온 것이다.
집을 나서서 광역버스와 전철을 타고 멀리 한양의 동북 방향 고덕역으로 간다. 계속해서 일기 예보를 체크하면서 수고한 수명이. 무슨 잡(Job)이든 리더는 아무나 하나? 최근 종잡을 수 없는 날씨를 보면서 삶의 지혜를 생각해본다. 예측이 불가능하고 정답도 없는 인간의 삶에서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버스안에서 매일 이른 아침에 받아보는 인산편지를 읽는다. 오늘 글의 제목은 세계 명작 산책 '거인의 정원'편. 천재적인 동화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거인의 정원'은 커다란 정원을 가졌으나 자기 정원에서 노는 아이들을 내쫒고 세상과 담을 쌓고 홀로 지내다 문득 삶의 의미를 깨닫는 거인의 이야기다. 계절의 봄이 왔음에도 자신의 정원엔 아직 봄이 오지 않음에 아이들을 다시 받아들이고 나서야 봄꽃이 만발하고 나비와 벌들이 찾아 온 것. 봄은 시간이 흐르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런 웃음이 가져 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인. 인산작가의 자연에 대한 사유에도 감동이다. 인산 작가는 "정원의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곧 자연의 철학자가 된다는 것. 우리 모두가 자기가 처한 곳에서 철학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음 좋겠다."고 말한다.
둘레길 출발점인 고덕역에 악속된 시간보다 30분이 늦었다. 기다려준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에 빠른 걸음을 재촉한다. 1Km 정도를 걸었을 때 햇빛 쨍쨍하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소나기를 뿌린다. 이러다 멈추겠지 생각한 비는 점점 폭우로 변한다. 우린 지붕있는 쉼터에서 비를 피하다 멈출 비가 아니기에 더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에 우의와 우산을 쓰고 일자산으로 향한다. 옷을 흠뻑 적시고 일자산 전망이 좋은 곳에 이르고 나서야 비가 멈춘다.
일자산은 서울 강동구와 하남시를 경계로하는 134m의 야산이다. 남북으로 한일(一)자 모양으로 뻗어있다 해서 이름 붙여졌다. 산이 위치한 둔촌엔 고려말 유학자 이집(李集) 선생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집은 이색, 정몽주, 이숭인 등과 더불어 절개로 널리 알려진 인물로서 공민왕 17년(1368년) 신돈의 실정 탄핵을 계기로 신돈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 은거를 했는데 그 고난을 자손 후세까지 잊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호를 둔촌(遁村)으로 바꾸었다."고 표지판에 기록되어 있다. 숨을 둔(遁)자의 지금 둔촌동의 명칭 유래를 말해주는 이집 선생 개인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자식들에게 면학을 권하는 이집 선생의 詩도 있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역사스토리를 만난다. 우리의 둘레길 걸음도 이런 숨어있는 역사이야기를 찾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흐리지만 개인 날씨에 비교적 전망이 좋은 곳에 서니 주위는 온통 무덤이다. 무덤들의 크기, 형태로 보아 아주 오래전부터 묏자리로 써온 것 같다. 저멀리 남한산성과 위례신도시를 바라보니 '잊을 수 없는 역사의 현장 남한산성을 두고 죽은자는 혼을 불사르고, 산자는 신도시를 건설하여 나라의 운명을 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산행대장은 구름속에서 피어난 듯한 한양 동북쪽 아득한 산들(적갑산, 예봉산, 예빈산, 검단산, 고추봉)을 차례차례 가르키며 설명한다. 그 중에 한 산은 최근 산 정상에 강수량을 측정하는 대형 측우기(?)를 설치했다고 한다. 남한산성 뒤 봉긋 솟은 벌봉은 산 기운이 그 어느 산보다 세어서 새해 첫날엔 꼭 그곳에 올라 떠오르는 해를 바라본다고. 산사나이의 타고난 운명을 보는 듯 하다.
오늘도 비를 맞으면서도 두런두런 우리들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그 중 우리들 관심을 끈 내용은 출산율 저하에 관한 것이었는데 병일이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싱가폴, 홍콩, 대만, 태국도 출산율이 저하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젊은이들의 도시 집중화 현상 때문.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얻기 위해 대도시로 몰려 경쟁이 치열한 삶을 살기때문에 결혼이 늦어지고 출산율도 떨어진다"고 말한다. 난 100% 공감했고, 인구 절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기관외 여러 기회의 시설들을 과감하게 지방으로 이전시켜야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구감소 문제 역시 기득권의 문제라는 확신이 든다.
종착점 올림픽공원역 쪽으로 들어서니 2주 전에 걸었던 낯익은 장소들이 나타난다. 인증 스템프를 찍고 식사는 조금 떨어져있는 한성백제 몽촌토성 옆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했다. '정원(庭園)' 빌딩내에 있는 '소나무' 레스토랑. 지난번 몽촌토성을 걷고 나서 식사를 했던 장소다. 그때 주의깊게 보지못했던 식당내 소나무와 자작나무 그림도 감상하고, 흰 종이 식탁보에 습관처럼 낙서도 해보는 여유를 가져본다. '비가 내린 일자산 트레킹 후 푸른 소나무처럼 우리 모두 건강하게 살아갔음 좋겠다'고.. 빌딩 이름도 오늘 인산편지 '거인의 정원' 이야기에 나온 정원. 기상청이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오늘의 날씨처럼 변화무쌍한 인간의 삶에서 걷기 좋아하는 우리들도 정원의 철학자, 자연의 철학자로 살아서 그 어느 곳에 처하더라도 삶의 의미를 깨달았음 좋겠다. 손주들을 주렁주렁 달고 사는 노년의 삶이면 좋겠다.
*고덕역~명일공원~일자산~오금교~올림픽공원역(8.9km, 2시간 45분 소요)
*(수명 대장의 트레킹 평가) : 추억에 남을만한 빗속 트레킹. 이를 굳이 미화한다면 여름 트레킹의 특권이라 할 수 있음. 1시간 정도 비를 맞았고 이후 비교적 순탄한 트레킹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속옷과 지갑속의 돈까지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강한 비였음. 조망이 터지는 일자산 묘지 구간에서 남한산성과 벌봉, 천마지맥(적갑산~예봉산~
예빈산의 견우봉과 직녀봉~검단산과 고추봉으로 이어지는 산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음.
20240726,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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