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 17구간(북한산 은평코스)
오늘은 2주 전 날씨관계로 연기했던 서울둘레길을 걷는 날. 처서가 지났고 태풍 종다리가 한반도를 가로질러 동해쪽으로 빠져나갔건만 한양의 날씨는 여전히 덥다. 그래도 간간이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가을이 옴을 감지한다.
17구간, 북한산 은평코스는
구파발역~선림사~하늘공원길~북한산 생태공원을 지나 불광역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거리는 길지않지만 한양의 서쪽 끝에서 북한산이 시작되는 기슭이라 간간이 오르막 길을 만난다.
예정된 시간에 구파발역 2번 출구에서 만나 서울둘레길 표지판을 보면서 선림사 방향으로 천변길을 걷는다. 아파트숲 사이로 흐르는 구파발천에 물새가 날아들고 잉어가 노는 모습을 보면서 깨끗한 환경을 지향하는 구청 행정에 박수를 보낸다. 선진국은 환경정책에 심혈을 기울인다. 난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강 정비에 나섬에서 비롯되었음을 감히 단언한다. 환경이 깨끗하면 인간들의 마음도 순화된다. 가짜 뉴스로 선동하고, 거짓말을 생명처럼 생각하는 무책임하고 얼빠진 정치인들을 제외하곤.
선림사에 도착하여 잠깐 쉬고 하늘공원을 향해 산을 오른다. 우리들 발길옆엔 들꽃들이 예쁘게 피어있다. 식물도감인 병일은 만나는 차례대로 비비추, 개미취, 봉선화, 능소화라고 말한다. 특히 씨앗이 터질 때가 되면 몸을 갈라 터져버린다는 봉선화를 보니 그 연정을 노래하다 얼마 전에 작고하신 현철 선생님이 생각나고, '명예'라는 꽃말로 하늘을 업신여기 듯 피어난다는 능소화가 하얀 구름을 머리에 이고 늘씬하게 피어 아름다움을 뽐낸다. 비교적 높은 기온임에도 간간이 선선한 서풍이 불어와 땀을 식혀준다. 찌는 더위, 장마, 태풍에도 생명을 마음껏 발산한 푸른 숲들이 아직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지만 이제 곧 추수가 지나면 푸른 채색도 빛바래진다는 생각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집을 나서는 나에게 늦둥이가 말했다. "아빠 나이를 생각하여 무리하게 걷지 않았음 좋겠다"고. 더위에 안전 걸음을 염려해준 막내가 고맙지만 우린 건강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누구에게도 예외없이 다가오는 시간의 존엄성을 느끼기위해 이 둘레길 걷기를 시작했는지 모른다. 오늘로서 총 21개 구간 중 1/3인 7개 구간을 걷게 되는데 내년 늦봄에 전 구간 걷기가 완료되면 또 어떤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그저 47년 전 같은 반 교실에서 함께 공부한 고향 친구들과 추억을 회상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걷는 이 시간만이 좋고 고마울 뿐이다. 그것이 지난 세월을 아쉬워 하기보단 주어지는 시간을 존엄하게 대하는 태도라는 생각을 해본다. 흘러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물을 바라보는 60대 중반의 우리들 마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2주마다 1구간씩 걷는 이 행사(?)에 어느누구도 빠지지 않으려 한다.
북한산 생태공원에 이르기 전 전망 좋은 곳에서 수명 대장은 푸른 하늘, 북한산을 배경으로 한 명 한 명 개인사진을 찍어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냥 한 컷에 전체 우리 모습을 담으면 될 것을. 불광동에서 올라 향로봉, 비봉에 이르기 전 만나는 기묘한 모습의 바위들이 많은 족두리봉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족두리봉은 독바위, 수리봉으로도 부른다는데 이는 내가 2년 전 북한산 전체 산행을 시작할 때도 몰랐던 사실이다. 역시 산을 진정 사랑하는 사나이는 모르는 것이 없다.
오늘도 걸으면서 우린 두런두런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제주 4.3사건(해방 후 분단된 상황에서 북이 북조선에서 화폐개혁을 단행, 확보한 기존 화폐를 남의 남노당에게 지원하여 일으킨 폭동으로 해석), 올 여름 찌는 더위로 인한 심각한 전력난 문제(지구 온난화 때문으로 전 세계가 신경을 써야하는데 화석연료 사용을 주장하는 트럼프가 미대통령이 되면 지구는 더욱 뜨거워 질 것이라고 걱정), 세계 패권 문제(시진핑이 등소평의 도광양회 유언을 등안시하여 100년이 아닌 불과 20년만에 미국에 도전장을 내민 것은 시진핑의 실책이라기보다는 미국이 의도적으로 유도했다는 설), 하마스의 수장 하니예 암살 사건(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못하는 이유는 하니예를 암살한 것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란이기 때문이다는 설)등 다양한 화제로 재미있는 대화를 나눈다.
어느듯 오늘 걸음의 종착지 불광역에 이른다. 하산 전에 인증스템프를 찍었는데 도장이 오늘 걸은 17구간 '북한산 은평코스'가 아니고 18구간 '북한산 종로코스' 도장이다. 시작점인 구파발역에 17구간 스템프가 비치되어 있나? 아님 서울시 행정부서의 실수인가? 어쨌든 18구간 란에 인증스템프를 찍었다. 다음 걸음에 17구간 스템프를 찾아 찍으면 되니까.
오늘 식사는 불광역 인근 '목포 세발낙지집'에서 아주머니의 구수한 목포사투리 서빙을 받으며 연포탕과 낙지철판볶음을 맛있게 먹었다. 교실에서 도시락을 펼쳐먹던 그때처럼, 한식구처럼 한솥밥을 즐겁게 먹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식사하면서 둘레길에서 못다한 대화도 이어졌다. 식당을 나선 후 정례 행사인 스벅에서 차를 마시면서 9월 일정을 조정하고 오늘 걸음을 마무리한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쏜 화살처럼 흘러가는 시간에게 엄숙한 모습을 보이고자한 우리를 반겨준 은평의 들꽃들이 자주 생각날 것 같은 서울 둘레길 걸음!
*구파발역~선림사~하늘공원~북한산생태공원~불광역(7.32km, 2시간 22분 소요)
*(수명대장의 트레킹 평가) 구파발역에서 구파발천을 따라
선림사에 도착하는
편안한 천변길과, 선림사에서 하늘공원을 거쳐 북한산 생태고뭔에 이르는 오르내림이 좀 있는 북한산 길. 높은 기온에 비해 비교적
선선한 서풍이 불고 습도도 낮아 걷기에 나름 괜찮은 날이었음. 하늘정원 전망대서 일망
무제로 터지는 서울 은평구를 조망하고, 모처럼 푸른 하늘도 만끽한 하루였음.
20240823,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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