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370

단원의 행로를 따라간 그림

단원의 행로를 따라간 그림 금강산과 영동지역 비경을 그린 화첩, '금강사군첩'이 탄생한 단원 김홍도의 걸음 행로가 궁금하여 '금강사군첩' 권1~권5에 수록된 산수화를 수록 순서대로 추적해본다. 권1 첫그림은 평창 '청심대(淸心臺)'다. 그림을 행로 순서대로 수록한 것이 맞다면 단원이 그린 첫 그림은 '경포대'가 아닌 '청심대'다. 동해시 '능파대(추암 촛대바위)'도 두번 째 그림이 아니고 화첩엔 10번 째로 수록되어 있다. 지난 나의 글이 틀렸다.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지 못한 나의 상상의 결과. 그런데 화첩 전반(특히 권2)에 수록된 그림 순서들이 합리적이지 않다. 행로 순서대로 수록하지 않은 것 같다. 수록된 순서대로라면 강원도 고성(청간정)에서 남쪽 울진(망양정)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고성으로 올라갔고..

세상이야기 2024.09.06

능파대(凌波臺)

능파대(凌波臺) 비교적 모사하기 쉬운 단원 김홍도의 그림 두 점(월하취생, 영지선녀도)을 그려보았다. '월하취생'은 쏟아지는 달빛 방안에서 붓과 술동이를 옆에 두고 생황을 불고있는 젊은 선비를 그린 그림이다. 달빛이 방안 가득히 번지는 가운데 방바닥에 깔린 담배잎(?) 위에 앉은 선비가 부는, 맑은 음색과 공명 가득한 생황 소리가 정적을 깨는 것 같다. 영지를 허리에 매달고 곡괭이에 꽃바구니를 매단 꽃의 여신을 그린 '영지선녀도'는 도교 색채가 짙은 그림이다. 여신은 여장을 한 남자 신선이라는 설도 있다. 옅은 채색의 이 두 그림은 서민적 냄새가 짙은 단원의 풍속화와 다른 느낌을 준다. 다양한 세계를 넘나든 단원의 그림! 단원이 정조의 명을 받아 금강산과 영동 지역 등 총 75곳을 직접 유람하며 그린 산..

세상이야기 2024.09.04

죽서루

죽서루 2년 전 8월 13일 삼척 죽서루에 갔었다. 올 여름이 다 가기 전 다시 삼척으로 가서 죽서루와 창해 정란 선생의 한평생 산행도반이었던 노새 청풍(靑風)이 이별여행 중 기력이 다해 숨을 거둔 곳, 청려동(靑驢洞)을 찾아 볼 생각이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지난 글을 찾아 읽어보고, 단원 김홍도가 정조의 명을 받아 금강산과 영동 지역 등 총 75곳을 직접 유람하며 그린 산수화 화첩 '금강사군첩'에 수록된 죽서루를 그려보는 것으로 그 아쉬운 마음을 대신해본다. 먼저 삼척 청려동에 대해선 '창해 정란'을 쓴 작가는 조선 최고의 산행가 정란 선생이 남긴 그의 산행기록 불후첩(不朽帖 )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의 나이 62세, 30년동안 발걸음을 함께 한 청풍과의..

세상이야기 2024.09.03

가을

가을 옥순봉은 충북 제천시 수산면에 있는 기암 봉우리다. 희고 푸른 여러 개의 봉우리가 마치 대나무 싹과 같다고 하여 옥순봉이라고 이름 붙여졌는데 강선대와 이조대가 마주보고 있는 기암 괴봉이 거대한 병풍처럼 펼쳐지면서 충주호와 어우러져 뛰어난 경관을 연출한다. 단원 김홍도는 이 옥순봉을 그렸다. 아마 제천에서 가까운 연풍(지금의 괴산) 현감 시절에 이곳을 유람하면서 그린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월악엔 수많은 기암 절벽들이 있다. 그림을 보니 작년 7월에 월악 북바위산을 찾았을 때 송계계곡에서 보았던 망폭대(望瀑臺)가 생각났다. 옥순봉을 축소하여 옮겨놓은 것 같은 모습의 망폭대. 옥순봉을 연필로 그리다 이젠 이름난 월악의 봉우리들을 더이상 밟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든다. 중봉, 영봉, 마패봉,..

세상이야기 2024.08.30

비교되는 얼굴

비교되는 얼굴 단원 김홍도의 그림 중 개(犬)를 그려보라는 선배님 말씀이 생각나서 비교되는 개 그림 두 점(모구양자도, 투견도)을 그려보았다. 동물화는 얼굴과 근육, 털 등에서 세밀한 붓터치가 필요한데 집중도가 약해서 그런지, 비교를 너무 의식해서 인지 덧칠이 더해져 조금 이상한 그림이 되었다. '하수는 더하고 고수는 덜어낸다'는 말이 다가온다. '투견도'는 원래 이름이 '맹견도'인데 사실 작자 미상의 작품이다. 이 작품의 일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910년대에 서울 북촌 어느 고가(古家)에서 고희동 선생이 최초 발견 후 안중식, 조석진 세 분이 감식(鑑識)할 때 이만한 작품은 단원이나 그릴 수 있는 것이라 해서 단원의 위인(僞印)을 찍어 화상(畵商)에 넘긴 돈으로 여러 날 호음했다는 사실을 후에..

세상이야기 2024.08.28

작품에 나타난 단원의 불교 세계

작품에 나타난 단원의 불교 세계 기록을 보면 단원 김홍도는 56세 때 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음을 알 수 있다. 그를 적극 지원해주었던 정조가 죽고 나서 모든 벼슬과 궁중 도화서를 떠나 힘든 생활을 했다. 62세 때 사망했으니 약 5~6년 동안 병과 시름하면서 곤궁한 삶을 보낸 것이다. 이 시기에 그린 그의 작품들은 모두 가을 걷이가 끝난 휑한 들판처럼 쓸쓸한 바람소리가 나는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내가 연필로 그려본 '소림야수도'와 '추성부도'이다. 단원의 그림을 연습하면서 내가 무의식적으로 추적해온 것은 그의 신앙세계의 흐름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신앙(종교적 신념)처럼 단원도 어떤 신앙에 가까운 내면 세계를 가졌는지를 발견해보는 것이었다. 난 2주 전 글에서 "세상의 ..

세상이야기 2024.08.27

단순성(simplicity)

단순성(simplicity) 단원 김홍도의 수많은 그림 중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화첩에 있는 그림들이 있다. 그 중에 4점을 그려보았다. 웃통을 벗고 부채를 든 남자가 잡은 물고기를 응시하는 장면을 포착한 '계색도', 수차를 힘차게 밟으며 밝은 표정으로 생업에 열중하고 있는 인물을 그린 '수차도', 영조의 강무 행사에 따라 나서 그린 '수렵도',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린 것 같은 '낙타를 탄 몽골인'이다. 모두 심플하면서 가벼운 그림들이다. 단원 그림의 특징, 성격과 조금 동떨어진 느낌을 받는다. 그림속에 詩를 넣어 그림의 성격과 그린 배경을 알게하고, 천지만물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묘사하고, 등장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들을 통해 세상의 모습을 그려낸 단원 특유의 그림들과는 색다른 느낌을 준다. 그림을 ..

세상이야기 2024.08.23

시와 그림

시와 그림 '詩가 먼저인지, 그림이 먼저인지?' 우리가 어떤 감흥이 오는 풍경을 보게되면 그림을 그려보는 것 보다 즉흥적 시를 읊거나 글로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림은 시간이 지난 후 당시의 감흥을 생각하면서 인상깊었던 대상과 장면 위주로 그려서 추억의 한조각으로 남기게 되고.. 그런데 시 구절이 적혀있는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보면 단원은 시를 먼저 읽고, 시에서 받은 감흥을 그림으로 바로 옮겼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김홍도의 이러한 그림 두 점을 그려본다. 기려행려도(騎驢行旅圖)엔 남송(南宋) 진여의의 시, '기려행려'의 한 구절이 씌어져 있다. '客子光陰詩券裏(나그네 세월은 시권 속에 있고) 杏花消息雨聲中(살구꽃 소식은 빗소리 속에 있네)'라고. 그림은 추운 듯 온 ..

세상이야기 2024.08.21

조선후기의 양반들

조선후기의 양반들 단원 김홍도의 눈. 평민과 동물, 자연을 향한 그의 눈은 따뜻하나 조선의 지배계급인 양반을 향할 때는 사뭇 다르다. 그러한 느낌을 받는 그의 그림을 연습해본다. 혜원 신윤복의 그림 '단오풍정'엔 단오날 냇가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을 훔쳐보는 두 어린 소년이 나온다. 외설스럽기보단 다소 익살스런 모습이다. 그러나 단원의 그림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을 훔쳐보는 사내(젊은 양반이다)의 모습에선 다른 느낌을 받는다. 빨래터에서 두 여인은 빨래방망이를 열심히 두드리고, 한 여인은 물에 발을 담그고 빨래를 세탁하며, 바위 위에서는 빨래를 끝낸 여인이 머리를 땋고 있는데 큰바위 뒤에서 한 사내가 이 모습을 훔쳐보고 있다. 빨래하는 모습이 궁금해서인가? 숨어서 부채로 얼굴을 가린 것을 보니 음흉한..

세상이야기 2024.08.19

말(馬)

말(馬) 나의 고향은 마산(馬山)이다. 바다를 앞에 둔 해안지역이 왜 '말의 산'이란 지명으로 명명 되었는지 난 잘 알지못한다. 고려 때 여몽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하기위해 집결한 지역이 당시의 합포, 지금의 마산인데 몽골군이 말과 함께 주둔하였기에 그 영향을 받지않았나 추측해본다. 오랜 역사를 가진 마산 '몽고간장'도 여몽연합군이 식수를 위해 판 우물('몽고정'으로 불리운다)의 물로 제조되었다. 지금도 몽고정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우물이다. 고교 때 학교로 걸어 다니면서 3.15 의거탑 바로 옆에 있는 몽고정에서 우물안을 들여다 보곤 했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선 말을 많이 보았다. 제주마는 한반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토종말이다. 아마 고려 때 원(元)의 몽고마 영향도 받았을 것이다. 제주 초원에서 방목..

세상이야기 2024.08.17